수필

『 그 겨울, 추워도 좋겠다 』

일흔너머 2008. 4. 7. 12:56

 [ 금호강가에는 느티에 잎이 나지도 않았는데 햇빛이 두껍다...원명심 ] 온달 金 義淳

땅거미 내리는 마을, 저녁밥을 준비하는 아내의 굼뜬 걸음마다 장난스레 휘감는 강아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들판을 건너오는 어스름을 지키고 싶다. 어설프게 거친 솜씨로 내가 직접 만든 나무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허드레 담요로 아랫도리를 덮고 눈물처럼 울컥 찾아 올 이라도 있을까봐 동구 밖을 그저 습관처럼 내다보며 하루를 마치고 싶다. 기어이 해는 지고 출출한 시장기가 아내의 반찬 솜씨를 돋보이게 할 때쯤이면 된장찌개에 설령 한 두 개의 티끌이 산나물 대신 들어 있더라도 노안(老眼)이 빚은 실수를 탓하지는 않으리. 하여 산골이 온통 어둠에 잠기면 내 작은 등잔이 홀로 빛날 뿐 까무러칠 것 같은 주위의 정적은 우리의 작은 오두막을 감싸리라. 봄을 기다리는 혹독한 겨울 추위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바람이 너무 거칠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철에 떨어지지 못하고 간혹 한 두 개 남은 떡갈나무 마른 잎의 간당거리는 소리가 들짐승의 발자국처럼 들리는 밤이면 흠씬 익은 김치에 메밀묵을 싸 서로 권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고 엊그제 다녀간 아들과 손자가 벌써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독하다는 생각이 일지 않도록 크게 놀라지 않아도 될 둘만의 관심사가 이따금 벌어져 곰삭은 애정의 이야깃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들이 또 손자가 어쨌다는 먼 이야기보다 아내가 눈길에 미끄러져 이웃과 함께 웃는 에피소드나 강아지와 함께 뒹굴던 이웃 아이 모습을 이야기하는 그런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추위 속에서의 웃음으로 따뜻한 내일의 봄을 걱정하지 않고 둘이라서 좋은 하루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 그 겨울, 추워도 좋겠다 』

기어이 해는 지고 
땅거미 내리면 
아내의 굼뜬 걸음마다 
반갑다 꼬리치는 복슬강아지 
들판을 건너오는 어스름 
허드레 낡은 옷가지 걸치고 
지키고 싶다. 
시장기가 밀려오면 
설령 된장찌개에 한 두 개 티끌이 
나물 대신 들어도 트집부리지 않고 
철없던 날 
사랑의 이름으로 울린 보답인 양 
흠씬 익은 김치에 메밀묵을 권하며 
안기고 싶다. 
산골은 
작은 등불 하나 빛날 뿐 
별마저 숨죽인 정적 
떡갈나무에 두엇 남은 마른 잎 
이따금 바람이 건들면 
간당거리는 소리 유달리 불거져 
둘만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그 겨울, 
함께 있음에 추워도 좋겠다. 
-----시가 있는 수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