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너머 2008. 4. 8. 00:39

 

 

1976년 6월 말, ROTC 군복무를 마치고 그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시작한 분필장사가 벌써 3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흘려보낸 셈이고 세상은 아까운 월급으로 이래저래 주물럭거리다가 늙은 교사 하나 만들어 논 셈입니다.

 

불교 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 연꽃을 아주 좋아합니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핀다는 이유는 아주 작은 한 부분이고 색깔이 부드러우며 넓은 꽃잎은 시원하기까지 하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숨은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애처로운 줄기에 욕심껏 넓은 이파리가 햇빛이란 빛은 다 모을 양으로 펼쳐져 있지만 비가 쏟아지면 마치 우리 인간에게 욕심을 비우라고 가르치듯 그 이파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빗물을 비우는 겁니다. 적당하게 말입니다.

 재밌지요.


거기다가 꽃은 또 어떻고요.
다른 꽃들은 피면 시들고 시들어 마지못해 겨우 떨어지지만 연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그 순간을 간직하고 도망치듯 떨어져버립니다. 억지를 부리거나 무슨 미련 같은 것도 없이 아쉬움을 두고 떠나버리는 겁니다.

놀랍지요.


그리고 연밥-연실(蓮實)이란 것이 재밌습니다.

연의 열매인데 아무리 오래 되어도 딱딱한 껍질에 물만 스며들면 뿌리를 내립니다.

천년, 아니 몇 천년이 지나도 이렇게 물이라는 인연만 닿으면 싹을 틔우고 다음 삶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 가는 겁니다.

신기하지요.

 

해마다 봄이면 파계재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지만 살면서 뭐가 그렇게 발을 묶었는지 그것 한번 실컷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푹 빠져보겠다는 마음에 벌써부터 설렙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입니다.

 

---- 2008. 02. 29. 명예퇴임을 하면서 여러 선생님들께 한 작별인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