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대륙의 겨울바람(상해-장가계-소주-항주 』 - (4)

일흔너머 2008. 4. 9. 15:55

<황룡동굴>

 
다음날 오전, 마치 쌀쌀한 가을 날씨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황룡동굴로 갔다.

우리 나라에도 석회동굴은 많지만 황룡동굴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조그만 배를 타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20여분 들어가 다시 한 시간 정도 걸어 다녔으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주차장에서 동굴까지 중국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갔는데 장사꾼들의 호객행위가 만만찮았다. 조그만 어린이가 밀감 몇 개를 들고 혹은 삶은 고구마를 들고 '천 원, 천 원….'을 외치는데 여행하는 우리끼리의 이야기나 이국의 정취에 빠져보는 그런 분위기를 방해했다. 사람 사는 것이 뭐 다를 게 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도 잘 사는 서양인들을 상대로 저랬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토가족(土家族)>

 
저녁식사는 중국에서 먹으니 중국음식이었지 지난번 산동(山東)에서 먹던  중국요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한국 사람들이 여행에서 약간의 불편을 없애려고 여행의 참 맛을 버린 것이다. 현지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의 요리를 먹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난데 향이 거슬린다거나 너무 기름지다거나 하는 이유로 매 식사마다 우리의 김치를 내놓게 한다거나 불고기를 요구하는 것은 차라리 여행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호텔부페인 아침식사를 제외한 식사는 싸구려 한국음식 정도로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중국의 맥주를 끼니때마다 두어 컵씩 마실 수 있었다는 데 나름의 위안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다른 관광객들도 장가계의 시골구석에서 중국의 유명요리를 기대하고 간다면 영 실망하고 말 것이다. 장가계에서 마지막 날의 저녁식사는 토가족의 돼지고기 구이였는데 우리 나라의 소금구이와 꼭 같았다. 처음에는 양고긴 줄 알았지만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양고기로는 탕을 만들고 돼지고기로는 구이를 했단다. 그리고 그들이 사냥으로 겨우 연명하던 때를 기억하라는 뜻인지 좁쌀로 밥을 지어 한 주걱 내 놓았고 누룽지를 내 놓았다. 어설픈 민속 무용과 칼을 공중에서 돌리는 재주를 선보이고는 토가족 민속춤이라고 내 놓고 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소수민족의 애처로운 삶은 본 기분은 씁쓸했다.

 

어둑한 밤길을 달려와 버스는 장가계 비행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닳을 대로 닳은 가이드는 인사치레로 다시 장가계를 찾아줄 것을 당부했지만 아마 대부분은 다시 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못하리라.

국내선 밤비행기로 무릉원 장가계를 떠나 상해의 홍교공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