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륙의 겨울바람(상해-장가계-소주-항주 』 - (5)
<소주(蘇州)와 항주(杭州)>
소주미인이란 말을 천하에 알렸던 미인도시로 중국의 10대 명승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옛부터 쌀 잠사 차 물고기가 많아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 불렀다. 당(唐), 송조(宋朝)에 발달하였고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옛 중국인들은 「소주의 여자를 아내로 삼고 광주의 음식을 먹으며 서호를 바라보며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서 유주에서 만든 관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생각했다.
<졸정원(拙庭園)>
명대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말년에 관직에서 은퇴하여 지은 것인데 정원이 지어진 후에 들어가 보니 마치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겨져
"정치를 하지 말고 일찍 이런 곳에서 지냈으면 좋았을걸 지금 생각하니 정치나부랭이를 한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은 머리가 나쁜 졸장부들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원의 입구에는 승입(勝入), 출구에는 유통(幽通)이라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정원을 보고싶은 마음에 들어갈 때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 정원을 보고 나오며 그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숙연히 나간다는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다.
졸정원 내의 다리는 모두 꺾어진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집주인 왕헌신이 정원을 지을 때 귀신들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원에 출몰할 것을 염려하여 다리를 지나다니지 못하게 다리를 꺾은 모양으로 설계하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귀신은 그냥 일직선으로만 다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왕헌신에게는 망나니 외아들이 있었는데 공부는 않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단다. 어느 날 왕헌신은 현묘관(玄妙觀) 앞에서 점괘를 보았는데 점쟁이가 뽑으라고 내놓는 산괘 중 왕헌신은 「졸(拙)」자를 뽑았단다. 이 점쟁이는 왕헌신이 병 때문에 근심하여 온 줄로 착각하여 풀이하기를,
"이 글자는 손(手)을 흔들면 모두 빠져나가게(出)된다."
라고 했다. 즉
"손을 흔들면 병이 낫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것인데 왕헌신은 자기가 죽은 뒤에도 대대로 졸정원이 자기집안의 정원으로 남게 되는지를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점쟁이가
"손을 흔들면 빠져나간다.(잃는다)"
라고 해석을 해주니 기대와는 반대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왕헌신이 죽자 오래지 않아 외아들은 도박과 음주로 자산을 탕진하였고 하루밤 노름에 졸정원도 잃게 된다. 졸정원에는 많은 정자와 동산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마음을 끈 것은 단연 유청각이었다.
<유청각(留聽閣)>
당나라(唐)의 유명한 시인(詩人) 이상은(李商隱)의
"秋 不散霜飛晩,(가을, 하늘 가득 흩날리는 무서리에 연잎은 시들었지만)
留得殘荷聽雨聲."(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여름처럼 여전히 남아 있네.)
라는 시귀(詩句)에서 유래되었단다.
연못의 다른 모든 시든 줄기는 보기 싫으니까 거두어 버려도 유청각 옆의 연잎은 그대로 두고 간간이 떨어지는 연잎의 그 빗소리를 들으며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 버리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졸정원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안내인은 연변 출신의 조선족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가이드를 할 수 있는 것도 조선말을 가르쳐 준 조상 덕이라며 감사해 했다. 그리고 한국인관광객도 고맙다고 했다. 경제성장을 이루고 잘 살게 되어 이렇게 중국까지 와서 돈을 펑펑 잘 써주니 자기같은 가이드가 먹고 살 수 있지 않은가 라며 재미있고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요즘 연변이나 하얼빈의 조선족들은 위기란다.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회지로 나가고 어지간한 아가씨들은 한국에 시집가 버려서 우리 나라 농촌처럼 늙은이들이 마을을 지킨단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지만 '농사지어 부자 되었다는 사람 어디 있더냐.'고 했다. 아마 조선족 자치구는 오래잖아 그 힘을 잃을 것이란다.
<호구산(虎丘山)>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호구(虎丘). 대개 호구산이라 부르는데 산(山)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언덕이라 했으니 높이가 낮음을 알 수 있다. 해발 50여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인근에서는 제일 높은 지형이라 한다. 가이드의 말대로 호구는 이 너른 들에 어울리지 않는 지형이었다. 높이는 낮지만 평지에 돌출 되어 다양한 변화와 여러 가지 전설들이 얽힌 우리의 야산과 같았다.
우선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주인공 오왕 합려를 매장한 곳이라고 했다. 월왕구천의 침입을 받아 죽은 그를 매장한 지 사흘째 되는 날 흰 호랑이가 나타나 무덤을 지켰다 해서 호구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그런가 하면 산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도 있단다.
<감천( 泉)>
입구에 중국인 특유의 뚜껑을 한 샘이 나오는데 어리석을 감(敢+心)자를 써 감천( 泉)이라는 샘이 있었다. 옛날에는 절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처음 들어온 서열이 낮은 중이 그 일을 담당했단다. 그런데 눈먼 장님이 그 일을 맡게되어 샘이 조금만 가까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랬단다. 어느 날 꿈에 도인이 나타나 이 곳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 하여 시키는 대로 하였는데 다른 중이 지나다가 보고는 웃으며 '그 곳에서 물이 나오면 내가 개구리가 되어 그 샘을 지키겠다.'고 비웃었단다. 그런데 꿈처럼 정말로 물이 나와서 이름을 감천이라 하였고 농을 하던 스님은 개구리모양의 바위가 되어 지금 감천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농도 가려서 하라는 이야기다.
<석도(石桃)>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서유기의 손오공이다. 어딜 가나 손오공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오공이 천상의 맛있는 과일 바로 천도복숭아를 마음껏 따먹다가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바로 이 소주의 호구산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로 변해서 돌복숭아(石桃)가 되었단다. 물론 이걸 한번 쓸어주면 수명이 길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잉태를 하고 하면서 내거는 조건은 우리 나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