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륙의 겨울바람(상해-장가계-소주-항주 』 - (6)
<석침(石枕)>
그런데 중국 사람들의 능청은 우리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조금 더 올라가면 제법 큰 너럭바위가 나오는데 모양이 베개처럼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을 석침이라 했다. 웬 베개가 저렇게 크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오고 가이드는 설명을 했다. 옛날에는 어른이 누우면 커지고 아이가 누우면 작아져서 자동으로 잘 맞았는데 어느 날 임산부가 베고 눕는 바람에 바위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 그 기능을 잃었다는 것이다. 갖다 둘러대기는 이 이상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들 한바탕 웃고 말았다.
<시검석(試劍石)>
조금 더 가면 시검석(試劍石)이라는 돌이 둘로 갈라진 것이 있는데 오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시험 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 경주의 남산 맞은 편 단석산(斷石山)이란 곳에 오르면 깁유신 장군이 백일기도를 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을까를 신에게 물어 시험삼아 내려친 바위가 있으니 전설은 전설인가 민족과 나라를 초월하여 곳곳에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오는 모양이다.
<천인석(千人石)>
호구의 중앙에 이르니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천인석(千人石)이라 하는 곳이다. 한꺼번에 천명이 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전설에는 합려의 무덤공사에 동원된 인부 천명을 이곳에 모아 비밀을 지키기 위해 독살시켰단다.
<검지(劍池)>
천인석을 지나니 협곡에 못이 있다. 해발 40미터의 언덕에 이런 협곡이 있다는 것에 사뭇 신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검지(劍池)라는 곳이다, 오왕 합려가 죽을 때 그가 아끼던 검을 함께 묻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운암사탑(雲岩寺塔)>
호구의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언덕의 정상에는 운암사탑(雲岩寺塔)이라고도 하고 호구탑이라고도 하는 아름다운 전탑이 있었다. 그 모습은 보였지만 가까이 와보니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흔히 말하는 피사의 사탑이 연상되었다. 물론 피사의 사탑보다는 엄청 더 오래된 것이라 한다. 하긴 서양의 역사야 어디 동양의 역사와 비교가 되는가.
<한산사(寒山寺)>
한산사라는 절은 원래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는데 한산자(寒山子)라는 당나라시대의 고승이 이 절에 머문 후로 그 이름을 따서 지어졌단다. 한산은 본리 고아였는데 스님이 길에서 주워 절에서 키웠단다. 그런데 같은 고아 처지의 습득과 어울려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사이가 좋아서 화목신선이라 불리었단다. 그래서 전각 안에는 그 두 사람의 상이 세워져 있고 그들에게 가정의 화평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절에는 진명보탑이라는 5층탑이 세워져 있어서 삼층까지 올라가 볼 수가 있었다. 절 옆을 흐르는 운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운하가 유명한 경항대운하다. 소주가 물의 도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한산사 경내에 들어서면 초입에 당나라 때의 시인 장계(張繼)가 쓴 한시(漢詩) 한 수가 걸려 있다.
이 시는 많은 중국인들이 것 중의 하나라 하는데, 역사적 관계 때문인지 일본에서도 유명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고 한다.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을 한 장계는 조각배를 타고 귀향을 하던 중 한산사 부근에서 날이 저물었다. 물길 옆에 배를 대고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는데, 달은 넘어가고 밤은 깊은데 숲 속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 들리더니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고소성(姑蘇城) 밖 한산사에서 범종소리가 이슥한 밤 공기를 가른다. 그 소리에 뱃전을 베고 시름에 잠겨 있던 장계는 한 편의 시를 쓰게 된다.
楓橋夜泊 - (풍교의 하룻밤)
月落烏啼 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우니 찬 서리 하늘 가득하고)
江楓漁火 對愁眠 (다리를 오가는 어선들 불빛에 잠 못 이루는데)
姑蘇城外 寒山寺 (고소성-소주의 서쪽에 있던 성-밖 한산사)
夜半鐘聲 到客船 (한 밤중 범종소리는 나그네 뱃전을 울리는구나)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이곳 소주의 집들은 검은 색 지붕에 흰색 벽을 하고 있단다.
이것은 문인과 미인이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검은 것은 먹물로 문(文)을 상징하고 하얀 것은 정결함으로 미(美)를 상징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