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사랑하면 벗겨라 』

일흔너머 2008. 4. 11. 08:26

 

복잡한 동경, 지하철에서 일이다.
퇴근길 혼잡 속에서 말쑥한 젊은 청년의 바지가 아가씨의 가방고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미안한 아가씨는 가까이 자기 집이 있으니 가서 기워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아가씨의 집에 도착하여 바지를 벗어 달라니까 그 청년은 난처한 얼굴로 망설이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속옷 즉 팬티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젊은 청년이 일본 최대 기업,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재벌 2세였단다.

 

중학교 다닐 때 키가 자그마한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해 주시던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시에는

 "팬티 하나에 얼마라고, 재벌 아들이라면서……."

하면서 아무도 그 선생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하며 직접 학생들을 보고 놀랐다. 선생님의 말씀을 증명해 보이듯 눈이 펄펄 날리는 추운 날인데도 아이들은 반바지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스타킹만을 신고 있었다. 2세는 차갑고 강하게 그래서 건강하게 키운다는 그들의 교육적 의도가 깔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길에서 만난 학생들 모두가 입술이 시퍼래 떨고 있었다. 중 고등학생도 견디기 힘든 것을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들도 그렇게 벗겨놓았다. 그것은 단정하게 입은 교복, 즉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유니폼이었다.

 
우리나라가 저랬으면 어떻게 했을까?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추위에 사랑스런 자기 자식들 다 죽인다고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이들 엄살에, 학부모 등쌀에, 매스컴의 뒷북에 모르긴 해도 애먼 선생 여럿 잡았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지만 요즘 우리는 어떤가?
요즘 아이들은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 때문에」 기초질서조차 무시한 부모 밑에서 자란다. 심지어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시범적으로 보이는 부모도 더러 있다. 무책임한 서양식 자유만 던져놓은 상태에서 바야흐로 사회는 지금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 저 학생들이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힌다.
그리고는 매를 들고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열성적인 선생님은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원시적 교사로 손가락질을 받는다. 미국에 며칠 다녀온 교육학자들은 미국의 가정에서 그저 눈앞에 보이는 사랑만 가져왔지 부모가 아무도 모르게 가르치는 엄격한 가정교육이 밑받침되었다는 사실은 보지도 못한 것이다.


학교는 연습의 장이다.
음료수를 마시고 병을 아무 데나 버리는 학생을 나무라지 않으면 장차 운전을 하다가 길거리에서 휙 하고 담배꽁초를 던지는 젊은이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리고 질서를 무시하는 학생이 자라서 난폭 운전을 하여 죄 없는 다른 운전자와 이웃을 다치게 한다고 생각해 보라. 학교는 바로 이런 학생들을 올바른 민주시민으로 길러야 할 의무가 있다.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는 우리보다 못살고 원시적이라서 태형(笞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평생을 잘 살아야 하는데 지금 당장 한 대의 매로 좀 아픈 것이 무슨 대순가. 경쟁이 치열하고 문명이 발전된 세상일수록 독립할 때까지 더 엄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자원이 없는 일본 같은 경우는 교육의 힘이 곧 나라의 존망에 직결된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민족과 나라가 살아 남기 위해서 웃고 놀고 편한 것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2세가 사랑스러울수록 더 차갑게 벗기고 냉정하고 혹독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라고 그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놈 매 한대 더 주라.」는 옛 어른들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