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봄날 하루 』
봄밤이 짧아지고 있다.
눈뜨면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 피곤이 풀리지 않은 잠결에 아침상을 앞에 하고 앉는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두어 술 뜨고 문을 나선다.
현관에서 조간신문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면 이때부터 하루의 짜증은 시작된다.
신문을 받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전화를 했고 이제는 신문을 넣지 않겠다고 확약까지 받았지만 그들은 무슨 심보인지 영험 없는 부처에게 무작정 절하듯 계속 던져 넣는 것이다.
대문을 나서면 이건 더하다.
웬 통닭 집은 그렇게도 많은지 선전물이 우리 집 대문을 온통 도배를 한다. 이건 떼도 떼도 갖다 붙이는데 장난이 아니다.
그뿐인가? 골목에는 피자집 통닭집 같은 선전물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거기다가 요즘은 쓰레기종량제라고 지정한 봉투에 넣지 않으면 치워주지 않으니 누가 골목의 쓰레기를 쓸고 치우겠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골목을 쓸고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하던 일이나 이웃들과 인사 나누던 일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밤새 내차가 안녕한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도시의 악동들은 아무데나 자신의 분을 풀어대는 탓으로 깨끗하게 세차하여 반듯한 자동차는 까닭도 없이 거저 긁어놓는다.
긁고 흠집내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종종 불을 질러 깡그리 태워버리기도 하니 말 그대로 밤새 안녕이다.
길에서 마주하는 운전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권이 들어서면서 없애버린 차선 때문에 낡아빠진 화물차가 일차선에서 꾸물대고 바쁜 차량은 기회만 나면 그 우측으로 추월을 해대니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고속도로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포화상태가 되어 주행선으로 차가 달려야 함에도 추월선이 주행선이 되어버렸다.
화물 소통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라지만 세금 많이 내는 승용차 운전자들은 짜증날 일이다.
교통지옥을 뚫고 겨우 학교에 도착하여 메일을 점검하려고 컴퓨터를 켜면 온갖 스팸들이 메모리를 다 잡아 먹고 있다.
"오빠, 가져봐"로부터 시작해서 H양 비디오(무슨 양들의 비디오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그리고 공동구매 삼만 구천 팔백 원까지 복잡 비참하다.
보통 여남은 개의 메일을 받는데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진짜 내게 온 메일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필요 없는 선정적인 스팸들이 대부분이다.
눈이 어둡고 손의 정확도가 떨어져 잘못 건드린 적이 있는데 화면 전체가 낯뜨거운 장면으로 난리였다.
마침 학생이 뒤에서 보고 있다가,
"선생님 이렇게 지우는 겁니다."
하고 간단히 지워주면서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되었음을 인정해 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따위를 못하게 차단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정보통신선진국이라고 야단들인지 모르겠다.
그런 짓거리가 정보나 통신의 선진국이라 자랑할 거리라면 차라리 선진국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치미는 울화를 누르고 겨우 교실로 가 보면 이건 학생들이 아니다.
모두들 친권이나 교권을 무시하고 그저 인권이니 평등을 외치다보니 난장판이다.
아버지와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은 가정의 권위와 사회의 권위를 팽개치는 것이다.
하긴 이 사회는 대통령이란 사람이 부정을 저질러 무시당했으니 더 이상 누구를 내세워 권위 운운하겠는가?
열 받아 짜증나는 이 사람에게 오늘이 무슨 사탕 주는 날이란다.
황사 낀 하늘이 노랗다 못해 끝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