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웰빙(Well being) 』

일흔너머 2008. 4. 17. 10:46

 

중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한 기차통학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십 년 간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까칠한 입에 억지로 한술 뜨고는 멀리 기적소리를 들으며 정거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기차와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 냅다 뛰어서 정거장 울타리에 뚫린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억지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헐떡거리는 숨을 돌리고 몇 장의 책을 훑어보다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그제야 도시는 아침을 열었고 통학생들은 그 새벽을 뚫고 뿔뿔이 흩어져 청운의 꿈이라도 품은 양 의기양양하게 학교로 갔다. 물론 걸어서 말이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종종 걸음으로 걸어야 학교에 도착하는 것이다. 

버스가 있었지만 몇 푼 되지도 않은 그 돈을 아끼려고 특별히 바쁜 일이 아니면 모두들 걸었다.

등교가 이랬으니 하교는 마음이 느긋한 것말고는 똑같은 상황이다.


결국 하루에 걷는 것만 서너 시간, 서있는 시간까지 합하면 너덧 시간을 운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요즘처럼 무슨 헬스클럽에 억지로 나가지 않아도 살찔 걱정은 없었다.

그 뿐인가. 먹는 것은 어떻고?


요즘처럼 다이어트 어쩌고 하면서 절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 먹었다.

소시지나 햄버그, 치킨(통닭)은 아예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멀건 고기국물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생일이라든지 결혼식이라든지 하는 무슨 특별한 이름이 붙어야했다.

그러니까 몇 달만에 혹은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얻어먹는 꼴이었다.


그러니 배가 불룩하게 나온 사람을 보면 그렇게 위엄이 있어 보이고 지금은 비만이라며 보기 싫다는 것을 그때는 부(富)티가 난다며 부러워했던 것이다. 웰빙(Well being)이라며 보리밥에다 야채를 먹고 힘들여 운동하는 것을 보면  먹을 게 없어서 먹지 못했고 차가 없어서 걸어다녔던 그 시절과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우스개 같지만 어렵고 불편한 것 그리고 약간 부족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이것이 건강에 좋은 웰빙(Well being)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