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예술은 연출이다 』

일흔너머 2008. 5. 8. 23:03

 

사진은 순간의 예술이라 했다.

미처 발견하기도 전에 소멸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찾아내고 붙들어 마치 곤충채집하듯 정리 보관하는 작업이 사진예술이란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워낙 많은 정보매체에 무딜 대로 무뎌진 사람들의 정서에 감동을 주려면 마약보다도 더 강하고 독한 자극이라야 한다. 때문에 억지로 꾸며서라도 사람들 오지랖에 난생 처음 보는 충격을 들이밀 필요가 있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진솔한가는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악의의 거짓만 아니면 아무리 두텁게 가식적 포장을 씌워도 관계치 않는 것이다. 음식으로 치면 과거 하던 대로 자르고 다지고 볶고 지져 내놓는 정도로는 안 된다. 사실을 갈고 부수고 짜서 그 진국을 한 입에 꿀꺽 삼키도록 내놓아야한다는 것이다.

 

말만 꺼내면 엔간한 사람들은 '아,'하고 눈치를 챌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2차 대전 막바지 미해병대가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유황도를 탈환하여 성조기를 막 게양하는 사진이다. 이것은 훗날 미국 해병의 상징처럼 된 사진인데 막상 그 내막을 알면 웃음이 나온다.

 

처음 사진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 구도나 현장감에 감탄한다.

그러나 조금만 사려깊이 들여다보면 금방 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아무리 명령이라도 여러 명이 달라붙어 국기게양에 그렇게 매달렸겠는가?

 

그렇지 않다.

사실은 여러 전우들의 엄호를 받으며 재빨리 국기를 게양한 후 곳곳에 땅굴을 파고 저항하는 잔당을 소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뒤늦게 도착한 사진 기자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연출을 시키고 찍은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물론 처음 찍은 사진이 역사적 진실이지만 뒤늦게 연출한 사진이 워낙 현장감 있게 조작된 나머지 오히려 진짜를 밀어내고 끝내 보도부문에서 퓨리처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전장의 긴박감 넘치는 장면으로 인정할만한 그런 사진으로 지금껏 미국인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는 사진으로 남게된 것이다.

 

결국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한 장의 사진을 덜렁 찍어 감동을 주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신선하고 청초하게 보이도록 분무기로 요리조리 물을 근사하게 뿌리고 꿀과 향을 진하게 묻혀서 벌 나비를 유인하여 머무르게 한 다음 미리 준비한 방향으로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요즘의 사진 예술이란 것이다.

 

시(詩)도 마찬가지다.

멋모르고 순수를 표방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성이 있고 순수하다고 해도 이미 독자는 닳을 대로 닳은 감정으로 대하기 때문에 시인의 순수함은 그저 우스갯감 정도로 여겨지고 만다. 특히 사람의 묘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자체가 어려운데 그저 덜렁거리며 잡다한 매체들을 접한 선입견을 가진 독자들에게 자신의 정서를 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아무리 훌륭한 표현으로 전달하더라도 독자가 시인과 같은 감정적 분위기 혹은 처지가 아니라면 아무리 감성이 풍부한 독자라 할 지라도 온전한 시의 맛을 보지는 못한다. 때문에 불가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매체 이전의 전달방법을 이용한다. 실제 이보다 더 명확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같은 경험 수준과 처지로서 이해하고 접근하는 이 방법은 여러 가지의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보고 읽는 사람이 그 시인과 같은 처지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간단한 방법을 동원한 것이 바로 가식적인 연출이다. 설령 사실과 멀더라도 의사전달의 감동을 위해서 그만한 연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연출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