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날을 없애버리자 』
사범대학을 진학할 때 2세 교육에 몸담겠다는 무슨 큰 뜻을 품었거나 남다른 각오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 다 가는 대학, 발이나 들이밀어 보겠다고 기웃거리다가 가정형편은 어렵고 어쩔 수 없어서 등록금 제일 싼 사범대학, 거기다가 발령 제일 잘 난다는 학과를 찾아 원서를 내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선생이 되었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스승의 날이 있는 줄도 몰랐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달 어느 날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마다 찾아오는 오월 어느 날, 거창하게 스승의 은혜가 어쩌고 사명감이 어쩌고 하다보니 정말로 내가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구나 제자들에게 잘 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고 제법 선생으로서 나름의 틀이 잡혀가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근의 다른 학교는 다 노는데 무슨 심본지 우리 학교는 스승의 날이니 스승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한다라는 시답잖은 명분을 내세우고 교장이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다. 스승이란 말이 이렇게 교사를 얽어매는데 쓰일 수도 있구나하고 첨으로 교직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때는 아예 스승이고 나발이고 팽개치고 그냥 근로자가 되고싶은 마음이었다.
거창하게 스승이라고 추켜세우고 욕보이느니 차라리 교사라고 대우해 주길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로 정하고 아무 조건 없이 그냥 하루 쉬도록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도 누가 ‘선생이 그러면 되느냐?’하며 나무라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평소에는 선생대접을 잘 해 주지도 않다가 저희들 필요하면 선생이 어쩌고 하는 것이다.
어저께 뉴스에서 참교육학부모회라는 단체가 촌지 어쩌고 하면서 들고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아, 또 스승의 날이 다가왔구나.'하고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서울 강남의 어느 학교 선생이 촌지를 받고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학교운영비 명목으로 긁어낸다는 어둡고 더러운 면을 보임으로 나라 전체 선생들 얼굴에 오물을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매스컴이란 것이 더러워서 시골구석의 어수룩한 교사를 찾아가 박봉에도 고행을 하는 성직자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며 초점을 맞추면 나라 전체 선생이 다 그런 것처럼 보이다가 서울 어느 학교 일부 닳아빠진 선생의 못되고 더러운 면을 비추면 또 그렇게 추잡하고 더러운 것이 선생으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매스컴을 미워하는 것은 선생이 모두 깨끗하고 또 나는 그 선생들 틈서리에 끼여 좋은 스승으로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 선생이 모두다 더럽고 나쁘다고 하더라도 하필이면 선생들의 잔칫날인 스승의 날 남의 잔칫상에다 재를 뿌리는 그 짓이 미운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엔 스승의 날이라고 꼭 날잡아 난장을 치지 말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정말 어수룩하고 정직한 시골 선생 그 속이라도 편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