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침묵의 앙코르 - (4) 』

일흔너머 2008. 5. 24. 11:33

 <바이욘 사원 입구 관음보살상-원본 사진을 보려면 사진 위를 클릭하면 됩니다. 많은 관음상이 둘러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머무는 동안 호텔에서 줄곧 우리 방송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편리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다. 뉴스 채널 YTN과 KBS 아리랑방송은 어디나 항상 나오는 것 같았다.

 

'아리랑'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바이온사원의 입구에서 지뢰피해자들이 모여 앉아 캄보디아의 전통 악기로 우리 나라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어떻게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아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정말 재미난 우문현답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가이드 자신도 신기해서 그들에게 물었단다.
"어떻게 저들이 한국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아리랑을 연주하느냐?"
고 물으니 그들이 황당해 하며 오히려 반문하더란다.
"네가 한국 사람이잖아?"

결국 가이드가 한국 사람이니 그 안내를 받는 관광객도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는 논리다.

우리는 웃으며 나오는 길에 그들 앞에 1달러를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제일 크다는 자연의 호수 '톤레샵' 관광에 나섰다.
우기에 비가 많이 와서 넓어지면 그 면적이 경상남북도 만하단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일부이고 수상촌을 보는 것도 거저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한번 스쳐 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달리는 버스 차창에 비치는 끝없는 지평선을 주시하며 이들이 왜 이 넓은 땅을 이용하여 삶을 윤택하게 하지 못하고 헐벗은 아이들이 두 손을 내밀고 1달러를 주문처럼 웅얼거리도록 만들었을까하고 안타까워하였다.

 <직접 볼 수 있도록 유리관에 보관한 희생자들의 유골>

 

세상이 다 알다시피 폴포트의 군사 정권은 그 많은 국민들을 죽이고 악명 높은 [킬링필드]라는 지옥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래서 지도자를 잘 만난다는 것이 욕심 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에게는 크나큰 행운인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은 자기가 제일 훌륭한 지도자라고 우긴다. 그러나 그런 아만(我慢)이 없고 내가 지도자로서 이렇게 모자라니 국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하겠는가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그런 지도자가 세월이 흐르면 정말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사내 아이의 다리는 빈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수상촌의 주민은 생활이라기보다 한 마디로 생존에 허덕이는 그런 삶이었다.
못 죽어 사는 그런 삶.
기가 막혔다.
그 넓은 땅을 두고도 말이다.

 

물론 그들의 습관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물 가운데서 마실 물이 없다는 수재민들처럼 호수 가운데서 살다보니 그 호수에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또 그 물을 마시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하기야 넓게 보면 우리도 지구라는 땅덩이에 버릴 것 다 버리고 또 그 땅에서 먹을 것을 얻어먹고 사는 것을 생각하면 똑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이 하면 우습고 내가 하면 당연하게 느껴지고 결국 이런 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발마사지를 하러갔다.
중국관광부터 시작된 발마사지는 동남아 어딜 가도 그렇고 그런 마사지를 한다.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밤에도 여행객의 주머니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남자에게는 그만한 아가씨를 여자들에게는 그만한 청년들을 배정하는 것도 그런 팁을 받아내기 위한 한 방법이다.

 

한참의 마사지와 식곤증으로 잠시 눈을 감고 졸았던가 보다. 내 눈앞에 바이온사원에서 본 그 미소를 지으며 입술이 두툼하고 검은 피부를 한 사람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피니 바로 그 캄보디아의 아가씨가 내 발을 잡고 주무르며 웃고있었다.
"내가 바이욘의 그 미소를 여기서 만나는구나. 아, 안타까운 캄보디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