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아, 베트남 - (1) 』

일흔너머 2008. 5. 26. 15:08

 <호치민 묘의 앞면 그리고 그 광장을 가로질러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는데 지금 수리 중이었습니다>

 

사나흘의 여행으로 그 나라나 국민들의 생활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이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내가 본 상황에서 또 내가 느낀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방식이다. 설령 그것이 어떤 편협한 관념으로 보고 또 우리와 사는 것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더라도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저 누구나 보면 그런 감정과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에 대한 나의 감정은 좀 특이하다.


1964년 비둘기부대가 미국의 요청으로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 내가 아는 형님의 친구가 참전하였다. 그 때 우리들의 주위는 지금 이야기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그래서 집도 절도 없는 어려운 사람들 중에 그 파병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그 분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약간 마른 몸매에 훌쩍 키가 크고 지적으로 생긴 얼굴, 거기다가 항상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너무나 점잖은 분위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있다.

 

비둘기부대가 비전투부대이고 공병부대라 전사자가 거의 없었다고 했지만 그 해 겨울, 우리는 그 분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슬픔이  가라앉을 때쯤인 이듬해, 더위가 심한 여름에서야 그 분이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베트남-월남이란 나라가 멀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학군장교(ROTC)로 1974년 임관하여 병역의 의무를 할 때 월남전쟁은 끝이 나고 있었다.

물론 그 참전 군인들이 나와 함께 근무하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월남이란 나라와 열대의 정글, 이래저래 언젠가 한번 가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본 월남(베트남)은 상상하던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벌써 온갖 환경이 정비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캄보디아를 먼저 보고 베트남으로 와서 그런지 이건 거의 우리나라의 시골보다 못하지 않았다. 물론 길이나 하천이나 이런 삶의 환경은 우리보다 아직 손길이 덜 닿은 곳이 많았다.

그러나 땅이 넓고 국민성이 부지런하여 언제든지 개발의 가능성은 앞으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좀 무거운 이야기부터 하면 위도 17도를 가운데 두고 북부의 공산정권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호치민]이란 지도자가 게릴라전술로 그리고 남부는 사이공을 중심으로 자유민주국가가 [쿠엔 반 티우]라는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싸웠던 것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미국의 협조자로 남쪽을 도와 싸웠다. 그러나 후진국의 대통령이란 작자들이 대개 그렇듯 부정과 부패로 앞가림을 못하는 사이 정말 훌륭한 지도자로 [호치민]이란 사람은 개인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나라의 장래와 통일을 위해 몸바친 것이다.

 

사실 그 때 티우의 부인 즉 영부인이란 여인네가 그 전쟁통에 온갖 사치와 부패로 말썽이 나서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호치민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해 몸바친 것이었다. 많은 일화가 소개되었지만 통일이 되고 사이공이란 도시 이름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호치민으로 고쳐 불려지고 하노이가 수도로 정해진 것이다.

 

 <왕궁-이 건물 좌측으로 호치민의 생활관이 허술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 하노이, 호치민의 묘를 보는 기회가 있었다.

물론 호치민은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의 묘를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그 유지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못난 후배 정치꾼들인 것이다. 국민들이 그를 숭배하였으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호할아버지', 젊은이들은 '호아저씨'라며 친한 이웃집 어느 아저씨나 할아버지 부르듯 그렇게 존경하며 가까워한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그의 집무실과 생활 집기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우리나라의 정치꾼들이 보고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딴은 대쪽같다는 사람도 정치만 하면 100평 아파트에서 떵떵 울리며 누가 빌려주어서 어쩌고 하는 변명을 해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 주위에는 부자 아니면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라가 융성하게 일어나려면 결국 국민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따르는 그런 훌륭한 지도자가 뒷받침 되어야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