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낡은 사진 속의 가족(家族) 』

일흔너머 2008. 5. 31. 12:08

 

 

먹고사는 것이 힘들 때는 사람 입이 무서웠다.

그래서 가족(家族)이란 의미보다 발 앞에 놓인 호구지책을 해결하는 것이 더 절실한 나머지 식구(食口)라고 했다. 밥을 먹는 입이 몇 개냐는 것이 가정을 이루는 가족의 숫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생존이 절박하던 때의 슬픈 역사였다.


우리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살았다.

지금은 두 딸이 혼인을 하여 막내와 세 식구가 산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보면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선잠깬 눈에 얼핏 들어온다. 항상 습관적으로 봐 왔기 때문에 그냥 생각 없이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한참을 살피다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나 오래 전에 찍은 사진들이다. 어린 첫째가 야윈 얼굴로 부끄럽게 웃는 모습, 둘째의 장난기 어린 모습, 또 사내치곤 약한 막내가 축구공을 한 발로 밟고 두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짓는 모습들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추억의 나날들로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특히 사진에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은 드물고 대부분 네 명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도 횡단도로에서 고마운 택시운전사가 찍어준 사진을 빼고는 다섯 모두가 함께 찍힌 사진이 드물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엉뚱한 생각은 어둠 속에서 나만의 자유로운 산보를 나선다.

 

결국 남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이 아니면 다섯 모두가 찍힐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혹은 집사람이 찍다보니 사진에는 항상 네 명이 찍힌 것이다.

아, 이 나이에 사진에는 찍히지 않은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것도 가족을 위해 굳은 일을 하는 한 명 말이다.

 

지금까지 사진을 보며 누가 얼마나 잘 나왔는가를 살폈지 그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누구였었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며 비로소 세상의 뒷면을 살피고 있으니 이 눈이 언제쯤 띌지……

세월이 흘러 나의 아들딸이 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저희들을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는 지난날을 살필 수나 있을는지…….

 

이래저래 가족이란 인연이 저 낡은 사진 속에서 오늘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