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적이 다르다 』
농사철이 한가한 지난 겨울에 친구를 만나 올해 농사가 어떤가 하고 물었다.
친구는 거두절미하고 [살구]는 서울로 부치지 마라는 거였다.
웃으며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그 친구 정색을 하고 한다는 말이 웃기는 것이었다.
식구들이 먹고 싶어도 억지로 참고 좋은 것만 골라 그것도 크기별로 선별하여 차곡차곡 살구 스무 상자를 담아 서울로 보냈단다. 그리고 속으로 계산을 해보니 한 상자에 삼 만원씩 하더라도 오륙십 만원은 될 것이니 그걸로 식구들 먹고 싶어도 참았는데 살구 대신 고기라도 한 근 사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대엿새 지나 통장에 꽂힌 판매대금을 보고 기가 막히더라는 거였다. 마이너스 이만 칠천 원이라나. 그래서 그 내역을 보니 원래 살구라는 게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도 아닌데다가 상차비 얼마, 운송비 얼마, 하차비 얼마, 매매중계수수료 얼마, 결국 귀 떼고 코 떼고 남은 건 마이너스라는 거였다. 그러니 농사 잘 지어 안 먹고 보내서 누구 좋은 일 시킨 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한창 배추 값 파동이 있을 때 농부들이 배추를 트랙터로 밭 가운데서 갈아 뒤엎는 장면이 TV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옛날 같으면 저렇게 뒤엎지 않고 이웃사람들이 뽑아 가도록 했을 것인데 하고 생각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봤다면 먹는 곡식을 폐기한다는 것은 죄 받을 일이라고 난리였을 것이다. 길에 떨어진 한 알도 아끼던 때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를 짓는 목적이 다르다. 그것이 돈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강가를 한 두 시간 산책한다.
그 산책길 강가 둔덕에 조그만 여유만 있어도 마을 사람들이 돌을 가려내고 밭을 일구어 상추나 배추를 갈아 텃밭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제법 큰 복사둔덕에 하천부지 사용허가를 받아 거의 기업형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이런저런 채소와 함께 호박을 오백 평정도 심어 놓았다. 그래서 속으로 아마 가을이면 누런 호박을 제법 많이 따겠구나 했다. 그런데 오늘 그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밭에 온통 잡초가 덮였지요?"
주인은 지나가는 내게 조금 부끄러운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호박이 잘 됐습니다. 잡초도 잡초지만 앞으로 나가는 넝쿨을 잘라줘야 호박이 많이 달릴 건데."
호박은 줄기가 자꾸 나가면 호박이 달리지 않고 넝쿨만 자라기 때문에 한 이야기였다. 그러자,
"호박을 따려는 게 아니고 잎을 따려고요."
"예...?"
나는 무심히 한 내 이야기에 돌아온 답을 듣고 너무 황당했다.
호박을 심은 이유가 호박을 따려는 것이 아니고 요즘 웰빙이다 뭐다해서 인기가 높아지니 그 잎을 딸 목적으로 심은 것이었다.
옛날과는 농사를 짓는 목적이 다른 것이다.
결국 호박보다 호박잎이 더 돈이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