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주례를 생각하자 』

일흔너머 2008. 7. 11. 11:05

 

"주례사를 올리기 전에 한 쌍의 젊은이가 인생의 첫출발을 하는 오늘, 축복해 주시기 위해 공사다망(公私多忙) 하신 데도 불구하고 원로에 왕림해 주신 하객여러분들께 양가 혼주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제자가 뭔지?
산나물이 한창 좋은 봄, 철을 놓치면 안 되는 데 그렇게 가고 싶은 산에도 못 가고 주례를 했다. 거기다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람들 바글거리는 곳인데 하객들이 연이어 들고나는 비좁은 곳에서 짜증스럽게 일요일 한때를 보낸 것이다. 말이 쉬워
"까짓 한시간 수고하면 되는 걸 뭐……"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다.

 

막상 누구로부터 주례를 부탁 받아 보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터벅터벅 예식장에 들어가면 바로 주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무슨 말로 어떤 축하의 인사를 할까? 양복은 어떤 것을 입고 갈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말이 주례사로 어울릴까? 적어도 며칠은 그 생각을 하면서 속을 썩여야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식이 12시였지만 아내는 서둘러 등을 밀었다. 주례가 늦어서 혼주들이 걱정하는 꼴을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은 예식장에 서둘러 도착했다. 다른 예식손님들로 들끓는 속에 공연히 일찍 도착하여 혼자 외롭고 낯선 고독감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지내야했다.

 

그리고 거의 반시간이 지난 후에야 신랑이 왔다. 사회자를 소개받아 몇 가지 주의를 주고 주례석에 앉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현악으로 구성된 실내악이 흐르고 제법 거창한 혼례식이 진행되었다.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데 뒤 배경(주례에게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배경으로 서 있고 거저 찍힐 뿐이다.)이 되고 그것으로 할 일을 마쳤다. 양가 혼주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난 뒤 하릴없이 그 자리에 어슬렁대기가 민망하였다.

 

모든 일을 마쳤다.
주례는 이제 강을 건너고 난 뒤 버려야 하는 뗏목과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었다. 그 흔한 예식장 점심도 같이 먹으러 가자고 붙잡는 사람이 없었다.(보통은 사회자가 주례를 대접한다. 그러나 사회자가 처음이고 신랑의 친구라도 되면 자신의 일에 빠져 이런 걸 잊게 된다.)


"그래, 이럴 때는 어떡해야 하는가?"
혼자 잠시 생각다가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중에 그들이 주례는 어떻게 되었는가하고 찾지도 않을 것인데 다 끝난 지금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는 결론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돌아와 아내한테 억지로 점심밥을 청해먹으며 속으로는 은근히 그들의 준비 없음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은 결혼식이라는 큰일 때문에 바빴다. 그리고 식이 끝난 뒤에도 주례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이래서 큰일을 치른다고 다들 어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앞으로 누가 부탁을 해도 다시는 주례를 하지 않으리라.
이것은 주례를 하고 난 뒤에 대접이 소홀해서 삐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신경을 쓴 탓에 그 날 하루종일 가슴이 아파 혼났기 때문이다.

 

우스개 같지만,
이제 결혼식에서 신랑신부 만큼 주례를 생각하고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