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 』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쉬다가 지나가는 개미를 관찰해 보면 재미가 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개미라도 자세히 보면 감정이 있다.
여기서 감정이라고 하면 뭐 그럴까하고 웃겠지만 정말이지 그렇지 않다.
개미의 감정을 알아내는 데는 우선 종이가 필요하다.
너무 앞서가는 사람은 이 정도의 얘기만 하면 벌써, ‘그럼 연필도 필요하겠네?’하고 성급히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필은 필요 없다.
개미가 자신의 감정을 피력할 정도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또 나약한 몸으로 연필을 들고 어쩌고 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준비한 종이로 개미가 가는 앞길을 막아보면 안다.
개미는 자신이 가던 길이 막히니까 잠시 주춤하다가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또 열심히 기어간다.
이때 또다시 개미의 앞길을 막는다. 그러면 개미는 또 길을 바꿀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을 몇 차례 하지 않아도 개미가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개미의 행동을 정말 잘 관찰해야한다.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한다.
그러면 개미가 더듬이를 얼굴에 갖다대고 눈물을 이리 닦고 저리 닦으며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성이 착한 친구가 이런 사실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학창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캠퍼스 나무 그늘에 앉아 실제 해보고 나는 정말 개미가 우는 것으로 알았다.
여기서 개미의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정말 우는 모습인지 아니면 더듬이를 가다듬는 행동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생각 없이 지나치면 아무 것도 아닌 그런 것이지만 운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우는 모습으로 보인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
개미는 거저 무리 지어 이리저리 헤매며 집안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가꾸는 미물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 따위와 거리가 먼 서민들을 개미라 비유한다.
요즘은 그 개미가 운다.
누가 자꾸 그들의 앞을 막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