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내 노래-보고싶은 여인아 』

일흔너머 2008. 8. 19. 10:51

 

 모임에서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권하면 그것이 명곡이든 유행가이든 스스럼없이 시원하게 부른다면 그것을 그 사람 자신의 애창곡(흔히 십팔번)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누가 내게 노래 부르길 권하면 나도 모르게 조용필의 '보고 싶은 여인아'란 제목을 노래방 책에서 찾는다. 그게 아마 2388이던가? 정확한 번호는 몰라도 그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는 나를 매료시키고 어느새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혹은 아내와 같이 노래방에서 흥에 겨워 어울릴 때 나도 모르게 열창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어 이르는가 하고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지만 그런 멋진 추억 같은 건 마음 여린 나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으면 어떤가? 다른 사람의 사연이라도 얼마나 감동적인가?

 

『 한 손에 술잔을 들고서, 마음엔 여인을 담고,
세월을 마셔보노라. 그 날을 되새기면서... ... 』
이렇게 유행가가 마음 깊은 곳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은 물론 가사내용이나 멜로디가 딱 맞아 떨어져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가 세파에 흔들리고 나이가 주는 세월의 무게가 삶의 깊은 의미를 어느 정도 느끼는 탓이리라.

 

『 내 눈가엔 이슬이 맺혔고, 흩어진 머리위로 흘러내리는
이슬비는 이슬비는 내 마음의 눈물인가요... ... 』
대개가 그러하듯 유행가의 가사는 점점 통속의 구릉으로 몰아가 이슬비와 눈물과 흩어진 머리칼까지 동원된다. 어차피 인생은 따뜻한 감성의 동산을 넘어 얼음처럼 차갑고 물같이 투명한 이성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시인이 말한 삼류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기까지 한 사람냄새 나는 속세가 아니던가?

 

『 지금은 없네, 지금은 가고 없네
떠나가 버린 여인아, 보고 싶은 여인아. 』
나는 유행가가 이렇게 지나간 과거를 진정으로 돌이키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한 노래를 보지 못 했다.

얼마나 솔직하게 그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나타냈는가? 지금은 그때와 달리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고 없다며 그냥 목청껏 토(吐)함으로서 더욱 보고싶은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것은 간단하고 단순함이 미묘하고 복잡한 마음을 더 짙게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어느 누구로부터의 도움과 위로도 얻지 못하고 스스로를 달래야 하며 외롭고 고독한 경우를 만날 때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한 조각 욕망을 붙잡고 소리치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
그것이 설령 명곡이든 유행가이든, 애창곡(십팔번)이면 상관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