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한다는 천박한 말 』
70년대에 본 영화 중에 헐리웃에서 한창 잘 나가는 배우 '스티브 맥퀸'과 '캔디스 버갠' 주연의「상 파블로」가 있었다. 평론가들은 숭고한 사랑을 너무도 잘 그렸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내가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봤지만 두 주인공이 사랑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남녀가 얼굴을 맞대고 정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도 별반 없었다.
중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수병(水兵)이 선교사인 부친을 따라가는 예쁜 딸에게 접근한다. 통속적인 구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시 젊은이들이 가지는 일상적 대화와 고국에 대한 아니 고향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고작이다. 그런데 마침 수병이 맡은 임무가 자국민의 소개(疏開)작전의 책임이라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교사를 수병은 목숨을 걸고 피신시킨다.
물론 남자 주인공인 수병은 떠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거나 다음 또 만나자는 약속도 않는다.
"고향에 돌아 왔다."
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기고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리고 선교사의 가족은 수병의 목숨을 담보로 무사히 그 험지를 탈출하지만 여자는 꿈에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곳을 자꾸만 뒤돌아본다……
스승의 날이면 우리 학교 조무래기들은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편지를 써서 내게 건네주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다양한 편지지에다 봉투, 심지어 편지 안에다 한 잔의 차(茶)까지 넣어서 부친다. 그리고 그 다양한 문구류와는 달리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저 '선생님을 사랑한단다.'
모두 모아서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더니,
"얘들이 대체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하고 이러는 건가?"
하고 웃는다.
세상 온통 사랑타령이라서 보고 배운 것이 사랑뿐이다.
거저 묵묵히 바라보면서 존경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하지만, 심하다.
너무 심하다.
사랑, 사랑 너무하니까 말뿐인 그 사랑이 천박해 보인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보라.
진정한 사랑이란 입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