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서부영화(西部映畵)」

일흔너머 2008. 8. 28. 10:06

 

 

서부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우선 탁 트인 광활한 대평원을 시원하게 말을 타고 달리는 장쾌한 풍경을 본다는 데 있다.
이태리의 서부극(과거에 우리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했다.)이 나오기 전, 할리우드에서 만든 정통 서부극은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았고 많은 총격장면도 없었다. 기껏 인디언과의 전투장면에 소란스런 고함소리와 총소리가 나오는 정도이지 갱단 과 보안관이 처절한 총격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정의한(正義漢)이 여러 명의 악당을 한꺼번에 통쾌하게 처리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은 우리들에게 나오자 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속편이 연달아 만들어져 나오는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황야의 무법자는 비슷한 스토리의 속편(續篇)이 너무 많아 관객이 제목만으로는 어느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정통이든 마카로니든 서부영화는 세 가지의 공통점을 가진다.
첫째는 우리 나라의 고전극과 비슷하게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종극(終劇)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당은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보듯이 총잡이 썬댄스와 그의 친구들이 군대의 집중사격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는 것을 종극으로 하고 있다.

 

둘째는 약속(約束)은 꼭 지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교훈적인 구성이다. 설령 지독한 악당이라도 등뒤에서 총을 쏘는 녀석은 비겁자고 그 비겁한 녀석은 서부의 사회에서 배척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약속을 지키는 습관은 결국 오늘날 미국이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준법정신(遵法精神)을 길러준 것이 아닐까?

 

얼마 되지 않은 그들의 역사에도 선조가 만든 법을 지키기 위해 뉴욕에서 맨허탄섬까지 지하철을 직선으로 하지 않고 구부려 공사하였다는 이야기를 미국 다녀오신 형님으로부터 들었을 때 과거를 무시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만 해대는 우리와 너무 대조적임을 알았다. 20Km가 되지 않으면 지하철을 만들 수 없다는 뉴욕주의 법을 지키기 위해 모자라는 거리를 곡선으로 구부려 거리를 늘인 것이다.

 

우리 같으면 이런 경우 쉬운 방향으로 법부터 고치고 직선으로 공사를 하거나, 아니면 시민들이 모르게 그냥 공사부터 해 버린다. 그리고 말썽이 나면 관리들 중에 어느 말단이 나와서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한 것이라고 우긴다. 그것은 선조들이 만들었던 법이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일부터 치르는 오늘날의 법을 경시하는 나쁜 관습이다.

 

특히 서부극에서는 평소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지나치는 묘미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소득의 분배」이다. 악당들이 은행을 털려고 갈 때는 여러 가지 계획도 좋고 서로의 의견도 그렇게 잘 맞아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훔쳐온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서로 죽고 죽이는 분열이 일어나 결국 세력이 약해진 악당들은 보안관에게 잡히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악당들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끌어와서 국가의 정치와 경제에는 아무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어느 사회나 「공평한 소득의 분배」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서부영화의 세 번째 교훈이다.

국가경제가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들떠서 일인당 GNP가 이만 불이 넘느니 할 때도, 나라위기를 구하고자 금반지를 모으고 소란을 떨던 IMF 체제에서도 서민들의 형편은 꼭 같은 것을 보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사회의 분배 문제는 없는가? 다시 한번 돌아 볼 때다.

 

불행하게도 서부영화에서는 이렇게 분배가 투명하지 못하면 평소의 규율이 깨지고 두목의 권위에 졸개가 감히 도전하며 서열(序列)이 없어져 버린다.
이런 면에서 서부영화는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영화의 한 장르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