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내 제자, 신부님. 』

일흔너머 2008. 9. 6. 12:18

 

 

카톨릭 재단 소속의 학교에서 근무한 탓인지 몰라도 나는 불교신자이지만 제자 중에는 신부가 더러 있습니다. 그 신부 중에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아마 그의 성격이 활달하고 격의 없이 소탈한 성품이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카톨릭 재단이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가 많은 학교장이나 원로도 새파란 젊은 신부님한테는 시쳇말로 기가 팍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담당 신부로 제자가 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몰라 당황했습니다. 종교적인 차이를 모르는 데다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아들이 신부가 되어도 그 신부한테 부모가 먼저 절하고 존대를 해야한다고 했기 때문에 혼자 난감해했습니다. 사람 사는 과정에서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다가 나름대로 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습니다.

그 신부는 학교에 부임하자 교무실에서 부임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바로 날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동네방네가 다 들어라는 듯 자기가 나의 제자임을 알리고 다녔습니다. 친목회 같은 술자리에서도 교장, 그리고 신부, 원로들이 자리를 하지만 그는 항상 나를 염두에 두는지 젊은 사람들과 먼발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술잔을 들고 제일 먼저 나한테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내가 학교생활에서 처신하는데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를 대하는 행동이 어지간히 잘못이 있어도 제자니까 그렇게 대하겠지 하고 다들 이해해 주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은 그 제자 신부가 삼월에 부임을 하고 한두 달이 지나 차츰 익숙해 질 때쯤에 터졌습니다.

아마 오월 중순쯤인가, 스승의 날입니다. 보통 학교마다 다르지만 스승의 날이 하도 말이 많으니 그냥 쉬는 학교가 많았습니다. 우리 학교는 수업은 하지 않고 행사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행사라야 뭐 별것이 아니고 아이들에게 '은사님께 편지 쓰기'라는 제목으로 글짓기를 하여 지난 날 배웠던 선생님들께 직접 부치도록 하는 그런 행사를 했습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조용히 편지를 쓰도록 하고 중간고사를 채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하고 거칠게 아니 약간은 급하게 열리더니 그 신부님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글 쓰기에 정신을 쏟고 있던 탓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하였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을 둘러보며 그 신부님은 연설을 하듯,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훌륭하신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시고 배우니 말입니다.지금 앞에 계시는 선생님은 제가 고등학교 때 은사선생님이십니다. 저는 선생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도 다시 그때처럼 배우고 싶습니다. 훌륭하신 여러분의 담임선생님에게 선생님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실바닥  맨땅에 엎드려 나에게 넙쭉 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크게 소리치며 말입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날 얼마나 우러러보았겠습니까. 하기야 우리 반 아이들이 날 존경한다고 내가 우쭐할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다음날부터 우리 반 아이들한테 하는 말이 다른 어떤 때보다 더 잘 먹혀들어 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 신부님이 그때 내게 준 CD가 하나 있는데 아직도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피곤하면 듣습니다. 다섯 번째 트랙에 있는 [백학]이란 러시아 노래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한때 연속극 '모레시계'에서 배경음악으로 묵직하게 나와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요.


그 신부님은 어디 멀리 가셨다고 하며 지금은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소식이 더 궁금해집니다.

종종 생각해 보면 그 신부님과 나는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스승이고 그 신부님이 제자인지,
아니면 그가 불교 신자인 나의 신부님인지 말입니다.


하긴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세 살 철부지에게도 배운다고 옛사람들이 한 말이 틀리기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