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계급 』
미국의 거부 '록펠러'는 영국으로 자주 출장을 갔단다.
그런데 런던에서 숙박은 항상 삼류호텔을 이용하였다. 어느 날 호텔의 지배인이,
"우리 호텔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아드님은 항상 일류호텔에 숙박하시는 데 사장님 같은 부자가 어찌하여 우리 같은 삼류호텔을 이용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록펠러의 대답이,
"아, 그것 말이오. 그 녀석은 아버지를 잘 만나 그렇고 나는 아버지를 잘못 만나 이렇지요,"
하는 것이다. 우습지만 한참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다.
ROTC로 군에 입대하여 본부중대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대대의 겨울 김장을 하면서 아무래도 여자 손이 있어야 음식 맛이 난다고 간부들의 부인들을 모신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누가 대대장부인이고 누가 중대장부인인지 인사를 해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끼리 김장을 하면서 대대장부인은 대대장 구실을 하고 있었고 중대장부인은 중대장 구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사관부인은 중대장부인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중대장부인들도 대대장부인이 지시하는 대로 따랐고 나는 그 날 우리 나라 계급사회의 웃기는 한 단면을 본 것이다.
아버지가 대통령이면 그 아들은 '대통령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장관이면 그 아들은 '장관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장군이면 그 아들은 '장군의 아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이나 장관 혹은 장군의 권한을 누리며 산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감히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아들들이 겸손하여 주위로부터의 배려(?)를 마다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이 우리도 모르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한 원인이다.
항간에 회자되는 모든 「게이트」라는 것도 바로 이 '아버지의 계급'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정 없는 부모가 세상 어디 있겠는가? 내 자식이라고 너무 사랑한 부모가 정 때문에 어지간한 것은 나무라지 않고 그냥 팽개쳐 둔 탓이고 또 인생의 출발선에서 모든 것을 갖추어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에 세우려다가 빚은 일들이다.
'포클랜드 전쟁'(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일어난 포클랜드 섬의 소유권 분쟁)에서 영국의 왕자는 직접 헬기를 몰고 참전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왕실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얻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반대로 걸프전 때 이라크가 쿠웨이트로 침공하였는데 쿠웨이트 왕실은 국민들 먼저 보따리를 싸 도망을 쳤다. 며칠 후 쿠웨이트가 다시 탈환되었을 때 국민들은 왕실이 돌아오는 것을 반대했다. 평소 왕실은 국민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온갖 이권을 누리다가 막상 위험이 닥치니 먼저 도망쳐버리는 그런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지도자는 국민들과 함께 해야한다. 그리고 같은 조건과 계급을 누려야한다.
교사의 자식은 '선생 아들'이다.
선생이라면 요즘 사회에서는 무슨 큰 경제적인 이익이나 존경도 받지 못하면서 그 아들에겐 구태여 '선생자식'이란 굴레를 씌운다.
그리고 조그만 잘못도 '선생 아들'이 저래서 되느냐는 식으로 의무감 섞인 핀잔과 경계를 받으며 산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로마시대 귀족의 의무처럼 자존을 넌짓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 선생 아이들은 어긋나는 경우보다 대체로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도자의 자식은 뭇 사람들의 감시아래 특권보다 의무를 다하고 해서는 안 되는 조건이 많아서 나중에 아버지 계급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어지는 풍토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