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너머 2008. 12. 1. 22:13

 

삼십 년이라,
정말 긴 세월이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긴 세월이라 할지라도 막상 지나간 시간이란 그저 휙 한 순간입니다.


며칠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 김 아무개입니다."
삼십 년의 세월이란 이름을 들어 알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에는 내가 가르친 반의 반장을 맡았던 녀석이 찾아와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말이 녀석이지 내일이면 나이가 오십입니다. 자기들이 가져온 차에 태워져 정말이지 끌려갔습니다. 일요일이라 청첩을 받은 곳이 두 군데고 한 곳은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중요한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삼십 년 전의 제자들이 만나자는 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경주 코오롱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그 곳에는 많은 제자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낯설었습니다. 허나 이렇게 자리를 만들고 불러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한번도 이렇게 대접 받는 자리에 나가보지 못해서 서먹서먹하고 어색하였지만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첫 직장으로 경주 근방의 사립학교에 처음 부임하였습니다. 도(道) 발령을 부산에 받고 학교 발령을 기다리다 지쳐 잠시 강사를 하려고 했던 생각이 인생을 바꾼 겁니다. 그때 담임을 한 학생들이 이제 나이 사십이 넘어 함께 늙어가며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때 함께 교편을 잡았던 선생님 다섯 분이 모두 함께 자리했다는 겁니다. 다섯 학급의 담임선생님, 그 중에 저는 2반을 담임했는데 우리 반이었던 제자들이 제일 많이 참석한 것이 또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좋은 겁니다.


거기다가 요즘같이 금값이 다락같이 비싼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행운의 열쇠라는 걸 만들어 다섯 선생님께 일일이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받아서 기분 좋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늘 느끼는 마음이지만 어른인 내가 내는 것이 마음 편하지 녀석들이 이렇게 하는 걸 보면 한편으로는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근무했던 일(1)반 선생님이 웃으며 농으로 자신의 [나와바리]니까 차 한잔 더 하고 가라며 현대호텔 커피숍에 들렀습니다. 보문호에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 알맞게 파도를 일궈내고 있었고 여든을 바라보는 선생님과 살아온 이야기로 땅거미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별 까닭 없이 눈만 감으면 떠오르고 잠깐의 여유만 있으면 생각나던 그 시절, 그 곳.
첫 사랑 같은 추억,

이제야 내가 왜 그렇게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는지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휙 바람처럼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그 곳이 첫 직장이고 그들이 잊지 못할 첫 제자들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