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중국 - 타이완 』--- (1)
[ 고궁박물원 2층의 휴식처 ]
<출발>
여행을 할 때 제일 싫은 것은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좀 느긋하게 해를 보고 일어나 여유있게 출발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처음에 계획은 김해공항에서 오전 10시 출발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계획이 바뀌면서 깜깜한 겨울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운전대를 잡아야했다.
사람 사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 그 난관을 뚫고 나갈 방법도 생긴다는 것이다. 김해공항 주차장은 비싸니까 그 근처에서 주차장을 차리고 하루 주차에 5천 원을 받으며 주차 후에는 공항까지 짐과 사람을 승합차로 실어다 주는 편리한 방법도 있었다. 물론 돌아와 공항에서 전화만 하면 공항에서 주차장까지 모시러 오고 자동차의 번호만 이야기하면 시동을 걸어서 차를 따뜻하게 준비해 주는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데는 이런 아이디어로 생계를 꾸리는 그것도 아주 번창하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삶의 요지경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3박 4일 일정이라 아주 짧았지만 실제 그 속을 들여다보면 4박 5일과 같은 계획이 짜여져 있었다. 여행사에서 짜는 일정은 오고 가며 보내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일박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지 않았다. 아침에 8시 50분발 비행기로 일찍 출발하여 타이완의 타오위안[桃園] 국제 공항에 도착한 것이 현지 시간으로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두 시간 조금 넘는 비행으로 북회귀선 근방의 작은 섬나라 타이완으로 온 것이다. 대구의 찬 새벽공기를 뚫고 김해로 그리고 태평양을 날아서 말이다. 세상 참 좋은 것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한번도 사람들과 다투거나 가이드에게 짜증을 내 본 일이 없었는데 이번은 좀 달랐다. 우리 팀의 인원이 너무 많은데다 여러 여행사에서 위탁을 받아 모은 탓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경기가 워낙 나쁘니까 여행사의 직원을 너무 많이 감원을 하여 그만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처지인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가 탄 비행기의 좌석은 사분의 일정도가 비어있었다.
일등여행사라고 내내 자랑하던 그 여행사지만 가이드는 우리말도 서툴렀고 우리가 그 가이드의 말을 눈치로 알아들으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답답한 나머지 생각나지 않으면 아무데나 그냥 [거시기]라고 이야기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것 역시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그것도 자기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는 여행이었다. 물론 준비는 나름대로 해 왔는지 종이를 펴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읽곤 했다.
처음 우리가 찾은 곳은 [국립고궁박불원]이었다.
여기서 [고궁]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고궁박물원은 1925년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건립된 유래라고 했다. 1931년 전쟁을 피해 고궁의 보물들을 내륙 여러 곳으로 옮겨 두었다가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인해 국민당 정부가 60만점에 달하는 보물을 대만으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산 보관하다가 1965년 비로소 지금의 타이페이 스린(士林)의 와이쐉시(外雙溪)에 옮겨 전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양이 많아서 한꺼번에 모두를 전시하지 못하고 해마다 돌아가며 전시품을 바꿔서 한단다.
나는 그 아름다운 보물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볼 욕심에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람을 했지만 안타까운 것은 내 짧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그 보물들의 가치를 다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박물원에 별로 더 머물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신기한 옥(玉)과 상아(象牙)에 관심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