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가 좋다는 것 』
중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그때는 TV도 없고 또 컴퓨터 오락도 없었다.
물론 프로 야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고교 야구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우리 반에 성적이 중간보다 약간 아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그 많은 야구 선수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 물론 포지션, 그 해의 타율, 수상경력, 그리고 출신학교까지 깡그리 외우는 것이었다. 정말로 여기서 장담하지만 그는 어느 야구 선수나 듣고 보면 그의 머릿속에 각인(刻印)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모르고 그의 머리 속에 없으면 우리나라의 고교야구 선수가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탁월한 암기력이었다. 만약 그가 그 암기력으로 공부를 했다면 중간이 아니라 일등은 누구보다 먼저 할 그런 위인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듯이 그렇게 많은 야구 선수들의 신상을 꿰차고 있었지만 이제는 쓸데없는 지난날의 이야기고 세상 관심 없이 늙어 가는 거저 한 중년일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까운 청춘을 한때 좋아하는 곳에다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고 좀 더 나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곳에다 쏟았다면 뭔가 자신이나 남을 위하는 큰 재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성장하면서 겪는 취미활동인데 뭐 그라느냐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도가 있는 것이다. 모든 관심을 너무 지나치게 쏟아 부어 정작 자신이 해야할 공부는 소홀했다는 말이다.
요즘도 주위에 학생들이 온갖 쓸데없는 것을 잘 기억하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인기 연예인의 이름은 그렇게도 잘 기억하면서 그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이름, 혹은 친척의 신상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날마다 급식 메뉴는 잘도 알고있는 학생이 오늘 이 시간 배우고 공부할 부분을 물으면 책을 이리 뒤지고 저리 넘기며 한참을 헤매는 경우를 왕왕 본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정말 머리가 좋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머리가 나쁘다는 학생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중학교 정도의 학과를 공부하는데 머리가 좋고 나쁨에 따라 나타나는 효과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머리가 나쁘다는 학생들의 경우는 공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또 관심을 가지더라도 말뿐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관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하는 집중력에 달려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 소위 말하는 IQ가 100이하였는데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중간정도 했고 지금껏 성공한 삶을 살아온 것을 보면 머리보다는 노력과 집중력에 달렸다고 본다. 물론 그는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끈기가 있고 성실하며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다.
자취를 하며 몇 달을 함께 지냈는데 초저녁부터 잠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나와는 달리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 보면 꿋꿋하게 책상에 앉아 버티며 공부하는 그를 발견하곤 했다. 나는 그의 그 부지런함을 배우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조금만 몸이 피곤하면 편도염이 극성을 부려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 부지런한 그를 보고 습관을 고치고 부지런해지려고 노력한 것은 지금껏 내 삶에 많은 도움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