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연을 끊는 일 』

일흔너머 2009. 3. 18. 11:40

 

인연 끊는 일은 어렵다.

 

이(齒)의 날이 6월 9일인 것은 보통 [육세 구치]라고 여섯 살 정도 되면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난다고 해서 정한 것이다. 지나고 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그 젖니가 처음 돋아날 때 부모들은 아이한테 이가 났다고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난리를 친다. 이렇게 처음 연을 맺는 것은 반갑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젖니는 영구치가 자라 올라오면 저절로 흔들리고 빠진다. 물론 아이는 별로 아프지도 않지만 이빨을 뺀다는 사실과 입에서 피가 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거기다가 처음 당하는 내 몸의 일부를 상실하는 일인지라 무척 당황하고 겁을 낸다.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빼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어릴 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빠지는 이빨이 그 젖니다. 인연이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젖니가 빠지고 나면 한동안 아이는 상실감에 빠진다. 아무리 짧았지만 함께 하던 연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빨 빠진 웃음에서 영구치가 바로 그 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한동안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한 삶의 과정이다.
 
어저께 치과에서 어금니 두 개를 뺐다.
의사는 치주염이 심해서 아랫니를 모두 빼고 어쩌고 하더니 우선 두 개를 빼자는 것이었다. 이젠 다 되었다는 이야기다. 담당의사는 이제 갓 서른 정도의 젊은 남자였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할 말이 있으면 왼손을 들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참고 살았던 우리는 옛 습관대로 거저 혼자 용만 쓰면서 참았다. 다만 나와 인연이 다한 이빨이 쉽게 빠져 주기를 속으로 빌면서.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오른쪽 이빨은 언제 뽑았는지조차 모르게 뽑혔는데 왼쪽이 문제였다. 뿌리가 부러졌단다. 다시 엑스레이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나중에 보여주는 부러진 그 이빨,

얼마나 미련이 있었기에 그렇게 떠나기가 아쉬웠단 말인가. 치과의사의 탁자 위에는 빨간 피를 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개의 이빨이 놓여 있었다. 하얀 거즈 위에서 날 흘겨보며 말이다.

 

양쪽 볼에 이빨이 떠난 자리를 커다란 거즈로 채우고 오십 수년간 같이한 내 삶의 동반자 둘을 뒤로 한 채 쓸쓸히 돌아섰다. 그리고 이틀째 진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을 끊는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