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쟁이 』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을 소리쟁이라 했다.
그 소리쟁이가 금호 강 둔덕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다.
정말 소리를 내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거저 그런 양 여기며 계절마다 다른 소리쟁이의 모습을 볼뿐이다. 아니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길에는 소리쟁이 외에는 볼 것이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하다.
원래 강가로 난 길섶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억새, 바랭이, 강아지풀들이 있지만 잎이 넓고 키가 큰 소리쟁이의 성장세를 감히 넘볼 수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돌보지 않는 풀밭을 점령하는 것은 위세 좋은 소리쟁이 뿐이다.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청도 산골 태생이라 온갖 나물들을 잘도 아셨다.
봄이면 이것저것 뜯어다 된장을 넣고 주물러 나물 무침을 찬으로 하곤 했다. 어느 것이 먹는 것인지 어느 것이 못 먹는 것인지를 용하게 알아서 어린 마음에도 신기했다.
소리쟁이도 그 중에 하나다. 어린잎을 뜯어다가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주었다. 미역국처럼 미끌미끌한 것이 따뜻할 때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식으면 시큼한 맛이 마치 음식이 상해서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았다.
콧물처럼 끈적거리는 액체의 시큼한 맛, 소리쟁이하면 오직 그 기억뿐이다.
봄이오면 파란 잔디가 둔덕을 덮어 보기 좋을 때쯤 소리쟁이는 벌써 특유의 그 큰 이파리를 너풀거리며 자리를 잡는다. 아니 추운 겨울을 웅크리고 그렇게 기다렸다가 재빨리 여기저기 난전을 펴는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뜨기 전에 전을 거두는 새벽시장의 아줌마들처럼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지친 잎은 양철 조각처럼 녹슬어 누렇게 변해 버리고 쓸데없는 열매만 욕심껏 매달고 시들어간다.
정말이지 우리에게 아무 쓸데없는 열매는 왜 그리도 많이 달고 있는지 보면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런데 어제는 무심히 지나치는 산책길에서 그 열매가 쓰이는 곳을 알았다. 참새 떼가 내가 가는 걸음에 놀라 소리쟁이 우거진 풀숲에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참새들은 멀리 날아가지 않고 거저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뛰어올라 날 놀리듯이 소리쟁이 주위를 맴돌았다. 자세히 보니 그러면서 소리쟁이 열매를 따먹는 것이었다.
이른봄 잎도 나기 전에 꽃부터 피우는 나무들이 많다.
세상 뭐가 그렇게도 바빠 저라는 가하고 속으로 나무랐는데 성급한 벌 나비가 일찍 나와 배고플까봐 그랬을 것이라는 나름의 이유를 찾고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졌다.
소리쟁이도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열매를 억지로 맺으려 고생하겠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미처 돌보지 못한 많은 날짐승들 먹고 살아라는 배려가 아니겠는가?
아, 세상에 필요치 않는 것은 없다.
세상 모든 일은 내가 몰라서 그렇지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일이 일어나야 할 까닭이 있고 서로 인연을 맺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