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부평초(浮萍草) 』

일흔너머 2009. 6. 24. 10:46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장마 시작이란다. 하지만 옛날처럼 지루하게 내리는 그런 비는 기대하기 어렵다. 거저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고맙다는 생각으로 어디 남는 땅이 있으면 저수지를 만들고 모아놓을 일이다. 물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서 하는 말이다.


강에는 잠시 내린 비에 흙탕물이 흐른다.

그 위로 파랗게 떼지은 점들이 떠내려간다. 부평초(浮萍草)다. 크기가 너무 작아 어디 다른 풀에서 떨어져 날아온 잎사귀 하나같이 하찮게 보인다. 식물이라면 땅에 뿌리를 박고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흐르는 물에다 맡기고 떠다니는 서글픈 신세, 정말 대수롭잖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이 덧없음을 표현할 때 흔히 이 부평초에다 우리의 삶을 비유했다.


하지만 부평초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개구리밥」이라고 해야지 안다. 초등학생 정도면 학교에서 생물시간에 다루었기 때문에 더 많이 안다.


우스개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설적이다. 마찬가지로 개구리밥은 개구리가 먹지 않는다. 그런데 개구리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무논에 부평초가 가득 떠 있는 곳을 개구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며 얼굴에 달라붙은 부평초를 보고 개구리가 먹는 줄 알았다.

 

사실 개구리의 입 가장자리에는 이 부평초가 붙어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마치 벼루 가에서 놀면 먹물이 묻는 것이 여사이듯이 부평초가 묻게 마련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오해하고 개구리가 부평초를 즐겨 먹는 개구리밥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자로 재니 그런 이름이 붙고 그런 의미가 서글프지 부평초야 어디 그런 마음이 들겠는가? 다른 식물은 한 곳에서 죽으나 사나 버텨야하지만 물이 흐르면 따라 흐르며 그런 대로 나름의 변화를 얻어 즐겁지 않겠는가?


또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도 나의 생각이지 부평초의 생각은 아니란 걸 생각하면 그것 또한 웃기는 이야기다. 내가 서글프면 세상이 서글프고 내가 행복하면 세상이 행복한 것이다.


「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 」
과연 새가 그럴까?
아님 그 새를 보며 님을 그리워하는 화자(話者)가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