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실크로드 - 소문보다도 더 험한 길 』---(7)

일흔너머 2010. 5. 26. 12:13

 

[ 낭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피자 모양인데 안에 무늬를 넣었다...! ]

 

여행을 하면서 흥미를 느끼는 것은 현지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상을 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들라면 음식이다. 중국 사람들은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고 할 만큼 음식에 비중을 둔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볼 것과 체험할 것을 미리 챙기고 이것 하나는 꼭 먹어보리라는 계획을 세운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호기심을 끈 것은 (nang)이다.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에서 먹는 빵이다. 밀가루를 둥글고 편평하게 반죽해 화덕의 벽에 붙여서 구운 다음 깨나 향신료 등을 뿌리면 완성이다. 그냥 먹으면 약간 질기며 따뜻한 차에 불려서 소스에 찍어 먹는다. 납작하여 휴대가 간편하고 한두 달 정도는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유목 민족들이 먹기에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 아침 식사를 넉넉히 하고 교하고성을 찾아가는 길에 가이드가 금방 구운 '낭'을 몇 장 사서 올라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길가에서 굽고 있었다. 우리는 배부른 줄도 모르고 뜯어서 맛을 보았다. 정말 서민의 빵이다. 깨를 뿌린 것인데 직경 삼십 센티가 넘는 커다란 것 하나에 4위안 정도 한단다.


이왕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해야겠다. 이곳 하밀에는 '하미과'라는 수박 비슷한 멜론이 있다. 여름철에는 정말 흔한 과일이지만 우리가 찾아간 것이 이른봄이니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이드에게 엄포를 놓았다. '하미과도 못 구하는 사람이 뭐 가이드 한다고'라며 핀잔을 얼마나 주었던지 결국 밤에 어디서 한 개를 구해 왔다. 물론 시들어서 맛은 없었다. 절에 가서도 눈치만 밝으면 젓국을 얻어먹는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 전체적인 교하고성의 안내판이 커다랗게 벽에 그려져 있었다...] 

 

교하고성(交河故城)은 투루판 10여 킬로미터 서쪽의 야르나즈계곡에서 발견된 고대 중국의 국가다. 두 개의 강이 만난다고 교하(交河)라 하는데 고구마 모양의 섬이다. 차사(車師)란 왕국의 천연의 요새였는데 당나라 때 정복되어 안서도호부로 되었단다. 지금은 그저 부서져 황량한 황토 벽만 군데군데 남아있는 서글픈 유적이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넓이가 「여의도 면적」의 몇 배니 어쩌느니 한다. 하지만 여의도가 얼마나 크고 어떤 모양인지를 모르는 시골 사람이라 그런 표현에는 익숙지 못하고 평소 거부감을 가졌다. 그래서 앙코르왓을 보고도 친구에게 「어지간한 읍 소재지 크기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교하고성은 강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삼각주였으리라. 폭이 넓은 곳은 300미터 정도, 길이는 얼른 보아도 1500미터는 넘어 보였다. 어지간한 읍 소재지 크기다. 강으로 둘러싸인 그 섬 안에 민가와 사원 그리고 옛 우물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 말이 유적지이지 그냥 팽개쳐진 폐허가 고하고성이었다...군데군데 흙 무더기가 딩굴고. ]

 

그렇다고 사원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건축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높은 흙벽으로 둘러싸인 토굴 정도였다. 워낙 비가 오지 않으니 지금껏 견뎌낸 것이다. 너른 벌판이라 우리가 한바퀴 둘러보는데 오전 반나절이 걸렸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이슬람 사원이며 무덤인 「소공탑」, 고창국의 서민, 상인, 귀족의 무덤인 지하묘지, 「아스타나 고분군」을 둘러보았다.

 

 [ 소공탑 입구가 거창하다. 내부는 무덤 두어 개 그리고 사원, 탑이 잘 정돈된 정원에 있었다. 액민화탁의 상과 함께 ...]

 

이슬람 문화에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큼직하게 만들어진 관이 줄이어 놓여있는 것을 보며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짜여진 일정이 아니라면 억지로 둘러볼 정도로 가치가 있는 곳은 아니다. 소공탑이나 아스타나 고분군은 우리의 여행에서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전 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강수량이 적은 지역을 둘러보기 때문에 어지간한 것은 다 말라버린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시신도 말라 미라가 되는 지역이 아닌가. 그래도 투루판은 포도 농사가 유명하다. 카레즈라는 지하 수로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는 것이다.

 

[ 청대 명장 액민화탁(額敏和卓)이 자신의 일생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은화 7000냥을 들여 지은 탑과 장군상, 그 우측으로 상인들의 점포가 줄이어 있었다...!]

 

우리가 찾았을 때는 농부들이 한창 포도밭을 손질하고 있었는데 길가에 뭔가를 널어 말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난 해 생산한 포도를 아직 말린다는 것이었다.
파란 포도 넝쿨이 우거진 전형적인 투루판의 농가를 찾았다. 지난해 생산한 여러 가지 건포도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아내는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맛을 보고 건포도를 샀다. 우리는 포도 하면 다 같은 걸로 알았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먹으라고 내놓는 건포도는 정말 종류가 많았다.

 

[ 살구가 벌써 파랗게 달려 있었다...4월 초순인데 말이다...! ]

 

나는 시원한 수박 몇 조각을 먹고는 지친 몸을 그들이 깔아 논 양탄자 위에 철퍼덕 던져버렸다. 하늘거리며 포도 잎사귀에 여과되어 들어오는 연두색 햇빛이 몸을 덮어주었다. 주위에서 떠드는 다른 여행객들과는 상관없었다. 다만 언제 또 이런 곳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농가의 평상에 누워 낮잠을 살푼 잤다.

좋다 나쁘다는 분간도, 그렇다고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걱정도 없이 그냥 평화롭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