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와 주례사 모음

『 주례에 대하여 』

일흔너머 2010. 6. 8. 08:03

 

 

 

 

 

지금까지 제자들로부터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도 실제 허락한 경우는 몇 번 없었다. 처음에는 해보지 않은 일이라 걱정이 앞섰고 또 '이 나이에 무슨 주례를 한다'고 하는 쑥스러운 마음에 청을 물리쳤지만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허락하고 말았다.

 

지금은 수도 없이 하여 이력이 났지만 처음에는 막막했다.
오랜 걱정과 마음고생 끝에 예식장에 직접 가서 다른 사람이 주례를 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틀림이 없도록 순서도 익히고 주례사도 준비하고 어느 것이 이치에 맞는가 하는 것도 연구하였다.

 

그런데 막상 주례를 하면서 예식장을 둘러본 나는 지금껏 열심히 준비한 것이 소용없음을 알았다. 아무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주례사를 듣지 않았고 자신들의 친지들과 나누는 즐거운 얘기에 빠져 있었다. 결국 형식적인 예식은 나의 허탈감과 함께 빨리빨리 진행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예식장에서는 한 쌍이 예식을 끝내고 사진 찍고 모두가 빠져나가는데 30분이 걸리는 것이다.

 

이 따위로 하려고 나는 거의 보름을 어떤 말이 그들을 축복할까? 하고 걱정하며 쓰고 지우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허무하고 기가 막혔다. 처음이라서 그렇겠지 하며 다음 두 번째는 하객들이 듣지 않았던 주례사는 아예 준비도하지 않고 마음가짐만을 단단히 하고 예식장에 갔다.
 
아니나다를까 하객들은 또 떠들고 있었다. 학생들이라면 한 명쯤 불러내어 호되게 나무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나는 속이 몹시 상했다. 참다가참다가 결국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기 온 하객여러분 중에 지금 내가하는 주례사를 듣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하고 아주 크게 마이크에 대고 고함 질렀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라는 듯이 의아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여기 앞에서 내가 혹시 실수라도 있으면 어찌하나 하며 걱정하는 나의 아내입니다.」라고 하니 그때야 하객들은 모두 웃으며 나의 주례사에 관심을 가지고 듣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는 정말 대성공을 거둔 주례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있는 어떤 분은 주례를 할 때 주위가 하도 시끄러워 주례사를 해도 소용없을 것을 판단하고

「신랑 좋고 신부 좋으니 앞으로 잘먹고 잘살아라 끝.」

하며 딱 한 마디로 주례사를 끝낸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건해야 할 결혼식이 한낱 지나가는 겉치레 관례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오늘도 예식장 앞에는 축의금 봉투를 들고 이쪽에 한 건 또 저쪽에 한 건하며 그냥 축의금 봉투만 던지다시피 하고 축하의 박수를 칠 여유가 없는 계절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