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너머 2011. 1. 10. 10:44

 

 

병원 화장실에는 자동으로 물이 흘러나오는 소변기가 있다.
오늘은 다니는 병원에서 검사가 있는 날이다. 항상 그렇지만 별 것 아닌데도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된다. 그러다가 막상 검사를 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슬그머니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마치 우리들 삶이 그렇다는 듯.

 
어제는 밥을 먹고 가야하는가 아니면 공복에 가야하는가를 몰라서 달포 전에 받은 처방전을 뒤적여 보았다. 무슨 글씨가 꼬부랑하게 볼펜으로 날려 써 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살피던 집사람은 1, 2일 전에 검사를 하라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아무리 봐도 영어 Q자처럼 보인다고 했다. 결국 전화를 해보라는 집사람의 주장에 끌려 전화를 걸었다.

 

 ARS라는 자동 응답이 그렇듯 아주 매정하게 그것도 감정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음성으로 응급전화이면 3번을 누르고 그렇지 않으면 일과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내일 갈 것이니 직원들이 출근을 하면 오전 여덟시 반쯤에 신장내과에 전화를 하고 물어본 후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밤새 혼자 생각해 보니 공복에 간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차도 번거롭지 않은 일곱시 반쯤 식전에 가자고 의논을 했다. 병원에 갔다 와서 아침을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보통 채혈을 하러 가면 소변검사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참은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병원에 가면 그때는 아무리 소변을 달라고 해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 정말 당황스럽다.

 

그래서 오늘은 억지로 소변을 보지 않고 참으며 차를 몰아 병원에 갔다. 주차를 하는 동안 집사람이 먼저 내려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한참을 기다려 차례가 되었다. 겨울이라 두툼하게 차려입은 옷을 벗으며 습관처럼 피를 뽑으려고 팔을 걷어 부쳤다.

 

그런데 나를 한참 바라보던 간호사가 진료표를 보며 내 이름을 물었다. 정확하게 사람을 확인하는 것으로 알고 이름을 또박또박 그 간호사에게 알아듣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가 하는 말이 '오늘은 소변 검사밖에 없네요.' 하며 종이컵 두 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그 간호사가 내미는 종이컵 두 개를 받아들고서야 비로소 '내가 무슨 이런 짓을 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가 막혔다. 밥도 먹지 않고 피를 뽑겠다고 달려온 것하며 식후에 해야하나, 아니면 식전에 해야하나를 두고 이틀이나 고민한 것들이 한낱 엉뚱한 짓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잠시였지만 허탈감에 힘이 쭉 빠졌다.


바코드가 적힌 종이컵 두 개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내 뒤통수에다 간호사는 '한 컵에 받아서 둘로 나누어 담으세요.'하였다. '안 그래도 잘 안다. 한두 번 하는 일도 아닌데.' 채혈실 문을 열고 나오며 소변을 억지로 참고 왔으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은 1, 2일이라고 하고 나는 영어의 큐자라고 한 그 꼬부랑 글씨가 알고 보니 '소변'이란 말이었다.


주섬주섬 바지의 지퍼를 내리며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는데 쏴하고 물이 시원하게 씻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소변을 보는 줄 알고 미리 변기가 알아서 물을 내리는 것이었다. 두 컵에 소중하게 담아 그것도 아까운 술을 친구와 나누어 먹으려고 잔 고르기 하는 식으로 둘로 나누어 담으며...!
'이놈아, 너한테 줄 오줌이 어디 있는데.'
엉뚱하게 변기에다 대고 화풀이 마냥 괜히 한마디 내뱉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