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네팔(Nepal) - 신(神)이 살아있는 나라 』---(1)

일흔너머 2011. 6. 13. 23:16

 

                 [카투만두 공항의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리고 Korea?라고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나라를 알아보았습니다...]

 

대구 같은 지방에 사는 사람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어지간한 곳은 인천공항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기가 힘들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경우 경제적으로 우선 일인당 십만 원 한 장은 더 든다. 거기다가 여행시간도 쓸데없이 다섯 시간이 더 소요된다. 아마 이래서 부산 쪽 가까운 곳에 영남 신공항을 마련하라 어쩌라 하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행사와 오전 6시에 인천 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었으니 네 시간 전인 새벽 두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해야 했다. 잠은 아예 포기하고 꼭두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집사람과 함께 큰 가방 둘과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택시를 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집 나가면 개 고생'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는 그 험난한 고생에 한발을 들이 민 것이다.


공항에서 휴대전화기를 로밍하고 여행사 직원을 만나 티켓을 받아 짐을 부치고 가지고 간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그리고 면세점으로 가 물건들 구경이나 하자고 게이트를 들어서자 과연 인천공항이 크다는 걸 느끼게 하였다. 살 것도 없는 데다 시간도 여유가 없어 그저 우왕좌왕하다가 시간을 죽이는 꼴이 되었다.


비행시간 약 8시간.
집사람은 창가 자리를 얻었고 그 옆에 앉았다. 복도 쪽에는 이목구비가 수려한 청년이 말없이 버티고 있었다. 청년은 우리가 하는 행동을 한 시간 이상 관찰했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스튜어디스가 식사제공을 해도 아직 점심때가 아니니 혼자 나중에 먹겠다고 할 정도로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다.


몇 번의 화장실 출입으로 그 청년을 괴롭히고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말문은 열렸다. 결혼 일년차인데 아내는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자신은 카투만두에서 몇 년째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더 아름답게 보였다. 
 

네팔 카투만두에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보려고 한다는 이야기에 청년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카투만두는 분지인데다 낡은 자동차들의 공해로 항상 뽀얗게 연무가 끼어 있다고 했다. 나의 꿈은 곧 바로 깨어지고 만 것이다. 청년과 함께 한 하늘에서의 대화는 여행지 네팔의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시계를 억지로 현지 시간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국 시간을 그대로 두고 네팔 시간은 3을 열 두시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구십도 돌려서 시간을 읽으면 네팔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정말 편했다. 네팔에서 보내는 삼일, 시계를 볼 때마다 그 아름다운 청년을 생각했다.

              [ 저 나이에 나는 뭘 했는가?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여덟 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방금 비가 스쳐지나가 물기가 촉촉한 카투만두 공항에 내린 우리는 공항에서 네팔 현지 가이드 하리(Hari Dahal)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 산업연수원으로 일년간 근무한 경험으로 한국말을 익혀 이렇게 관광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나이 사십 삼 세, 정말 순수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