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16)
[ 뭄바이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 앞, 바람이 세차게 불고 멀리 산 중턱에 구름이 걸려 있는 걸로 봐서 곧 험한 날씨가...]
여행의 마지막 날은 항상 피곤하다.
그만큼 긴장을 풀어서 그럴 것이다. 거기다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 10분에 아침을 먹고 5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으니 이건 정말 강행군이다. 석굴 두 곳을 관람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 탄 버스는 설 줄을 모른다.
어제 탄 버스는 라디에이터가 말썽을 부려 결국 바꾸어 탔는데 이 버스도 마찬가지다. 그럴 것이 인도의 길은 고속도로라는 것도 말끔히 포장된 곳이 드물다. 우리나라 국도 정도면 대단한 도로다. 거기다가 태어난 지가 오래된 늙은 버스는 당연히 몸살을 앓고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 가이드가 놀리다가 가 버리자 개는 하릴없이 앉아 있다. 인도의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개, 다들 순하다...]
여행 중에는 가이드를 잘 사귀면 재미있다. 여러 가지 현지 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인도가이드는 총각이었는데 스스로 무사계급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학 때 크리켓을 하여 아주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 징글맞을 정도로 건강했다.
배탈이 나서 애를 먹는 우리를 놀리듯 '계속 삐리리 계속 삐리리.'라고 했다. 설사를 한다고 놀리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하니 바로 이 '삐리리'하는 말이 나왔다. '래썸 삐리리. 래썸 삐리리.'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알아보니 네팔 민요인데 사랑하는 사람끼리 부른다나 어쩐다나. 어쨌거나 배탈난 우리들에게는 듣기가 거북한 노래였다.
이 가이드가 나의 선글라스와 집사람의 시계를 탐냈다.
선글라스라고 해봐야 요즘 유행하는 비싼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산 골동품인데 흔히 '라이반'이라고 케이스가 허리띠에 찰 수 있도록 되어 여행 중에는 편해서 가지고 간 것이다. 시계도 우리가 눈이 나빠 여행 중에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하니까 며느리가 사준 중국산 만 원짜리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 갈 때는 줄께'하며 약속을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자기 것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했다. 뭄바이 공항에서 헤어질 때 잊지 않고 안경과 시계를 주니 자기 친척에게 선물하겠다며 무척 좋아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도 내가 쓰던 물건이 이국 땅에서 나에게서 받던 사랑보다 더 사랑 받으며 지낼 것이란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 오랜만에 만난 휴게소인데 우리나라 구멍가게 정도였습니다.. 주차장은 버스가 몇 대 주차할 정도로 정말 넓었습니다.]
오후 네댓 시가 되자 집사람은 출출한지 과자를 꺼내 먹고있다. 이라지 말고 차라리 휴게소를 들러 약간의 간식이라도 하고 가자고 가이드에게 일렀다. 휴게소라고 해 봤자 인도에서는 음료수 한 잔 겨우 사먹을 수 있는 것이 다다. 마침 휴게소 앞에 약간의 과자를 팔고 있는 포장마차를 발견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가이드의 통역으로 겨우 과자를 샀다. 보기보다 과자는 맛이 좋았다.
특히 인도의 유제품은 맛과 질이 훌륭하다. 결국 가이드는 과자 몇 봉지를 더 사서 모두에게 돌렸다. 물론 우리가 낸 과일 값 중의 일부이다.
아그랑가바드를 떠나오면서 따라오던 구름이 이젠 제법 검게 변하고 바람을 함께 몰고 왔다. 우리가 휴게소를 떠날 때 심상찮은 바람이 주위를 휘돌더니 결국 한 두 방울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 가이드가 진실을 털어놓았다.
「뭄바이에는 어제부터 엄청난 비가 왔다. 우리가 오늘 일찍 뭄바이에 도착했다고 해도 관광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맑은 날 알로라와 아잔타석굴을 관람한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 우리는 뭄바이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겠지만 비행기가 이런 악천후에 꼭 출발하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어제도 몇몇 비행기는 결항이 되었다. 그러니 느긋하게 뭄바이로 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
는 것이다.
나는 가이드의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비가 와서 비행기가 결항을 하다니 바람이라면 또 몰라도….'하면서 의심을 했다.
그러나 막상 뭄바이에 오자 그렇겠다는 수긍이 갔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내리는 그런 다소곳한 비가 아니었다. 버스 차창에 양동이로 들이붓는 것이었다. 간신히 식당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약간 숙지막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뭄바이 공항으로 갔다.
[뭄바이에서 마지막 식사는 밴드의 생음악이 흘러나오는 제법 그럴듯한 곳에서 했지만 음식은 역시 인도 음식으로...!]
집사람은 멀미를 심하게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멀미약을 잘 먹지는 않는다. 집사람은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멀미약을 먹었다. 멀미약이란 것이 거의 수면제 역할을 한다. 한 병을 먹으면 하루 동안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는 서 있는데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집사람은 잠이 들었다. 의자를 뒤로 눕혀주고 싶지만 이륙하기 전에는 의자를 똑바로 해놓으라고 안내양이 돌아다니며 고쳐주고 있다.
그대로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기다리다가 겨우 비행기가 활주로로 나아갔다. 새벽 2시가 넘어 비가 퍼붓는 뭄바이 밤하늘을 비행기가 솟아오르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집사람의 의자를 뒤로 뉘고 난 뒤는 아무 것도 기억이 없다.
한참을 잔 모양이다. 눈을 뜨니 깜깜한 기내 희미한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비행기는 인도 동부 퀠쿼타 상공을 벗어나고 있었다.
안내양을 불러 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이내 기내식을 받았다.
비빔밥이다.
밥을 생전 처음 먹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비빔밥 그리고 빨간 고추장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란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