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파라솔

토굴산방227 / 도산스님

일흔너머 2011. 11. 20. 23:40

 

 

칼날(善)도 칼이요, 칼등(惡)도 칼이다.(기독교적 사랑)

또한 칼몸도 칼이다.(유교적, 중용)

위 세가지 모두를 함유한 칼 그 자체(全體) 이런 것이 중도(中道)다. 종교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있듯이 일부를 전체로 봐서는 안 된다.

또한 그 일부도 코끼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코끼리의 일부 임에는 틀임없지 않은가?

전체를 보는 눈 : 혜안(慧眼). 천안(天眼). 법안(法眼). 불안(佛眼). 개안(開眼)된

자는 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다. 바다도 역시 물 담은 육지다.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밑으로 육지는

서로 닿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이(不二)다.

둘이 아닌 것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그렇다고 셋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고, 셋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일부를 부정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不二 卽 中道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의 관념에서 '너는 나일 수 있고 나는 너일 수 있는'

좀더 관용적인 관념을 종(宗)으로 삼는다.

 

 

                                                        [도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