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煽動) 」
믿기지 않으면 실제로 한번 해보십시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만 다소 위험하니 주위를 둘러보고 차(車)가 오지않을 때 해야 됩니다.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가자......"
하고 친구와 건너는 척하면 신호등이 붉든 푸르든 보지도 않고 그냥 나섭니다.
물론 장난이지만 대중은 어느 새 자신을 잃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옳고 그름의 판단없이 끌려 가는 겁니다.
6, 70년대에는 친구들과 함께 데모도 많이 했습니다. 등록금 인상 반대부터 독재타도, 민주화 등등...뭘 모르면서도 친구 따라 냅다 손흔들고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선동꾼의 꼬임에 빠져 수업이 없으면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운 친구가 넘어지거나 잡혀가면 욱하는 마음이 생겨 더 심하게 주먹을 쥐게 되더라고요.
웃기는 건 그때의 경찰 입니다.
취조랄 것도 아니고 그저 유치장에 가뒀다가 때 되면 먹을 것 주고 소 닭 쳐다보듯 하다가 해 떨어지면 "학생들이 그러면 되겠냐? 앞으로 공부만 하자." 면서 달래듯 집으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훈방조치'입니다.
그러면 바로 집으로 가는 친구는 없습니다. 친구자취방이나 학교 연구실에 모여서 밤새워 막걸리에 무용담에 죄없는 하늘에 삿대질을 하다가 그렇게 젊은 날은 밝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빠져 살던 그때가 정말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때 선동하던 친구들 이제 다 먼저 가고 뒤따르던 졸(卒)들은 아직 살아 남았습니다.
작은 완장이라도 차고 앞에서 호기부리던 그 선동꾼들은 소위 출세를 하고 권력의 변두리에서 멋모르고 독을 꿀처럼 빨다가 먼저들 간 거지요.
지난 날들을 늘그막에 돌아본다는 건 힘겹게 산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습니다.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인간성도 별로 좋지않은 친구들이 지도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으니 어찌 그 명(命)인들 제대로 지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다시 태어나도 또 그 짓을 할 겁니다. 천성 고치는 약은 없다지 않습니까?
그래도 세상 일 모릅니다.
그런 인간도 필요한 모양 입니다.
역사를 보면 어느 시기나 어느 나라나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그런 부류가 꾸역꾸역 나타나서는 세상을 뒤흔들고 사라집니다.
그것도 혼자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끌고 들어가 주위를 온통 흙탕물을 만듭니다.
마치 내가 해야 할 필연의 책무처럼 의기양양하게 선동을 하는 겁니다.
오늘도,
대중은 묵묵히 그 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