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화 장 (化粧) 』

일흔너머 2008. 12. 5. 14:49

 

 

둘째가 중학교에 입학 할 때라고 기억한다. 보통아이들이 모두 그런다고 하면서 눈썹을 얼굴모양에 맞도록 예쁘게 뽑을 건 뽑고 면도하여 다듬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생긴 대로 살지 꾸민다고 되나?' 하면서 무척 불만이었지만 자식이 예뻐지는 것을 아버지로서 억지로 말리지는 못했다.

 

나라가 불안하던 과거의 전쟁시(戰爭時)나 도덕이 문란한 사회분위기로 인해 인신매매라든가 원조교재라든가 하여 법이 여자들을 잘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 예쁘게 보이는 것도 하나의 죄를 짓거나 풍기(風氣)사건의 발단이 된다.

 
물론 왜구(倭寇)가 설치던 때는 딸을 일찍 시집을 보낸다거나 지저분하게 얼굴화장도 안하고 추하게 생활토록 한 역사 속의 예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은 남자들도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고 투자하는 데 하물며 여자들이 예쁘게 보이려 화장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아침밥을 거른 채 화장대 앞에 앉아서 출근시간에 쫓기는 첫째를 보면 이건 남자로 태어난 것만도 행운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험하여 여자아이를 가진 부모는 항상 걱정이 앞선다. 예쁜 아가씨들은 더욱 성범죄 자들의 표적이 되는 것 같아서 아예 화장을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만약 꼭 하고싶다면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예쁘게 화장하고 나타나며 평시에 싫은 사람에게는 밉게 보이도록 화장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방어적 화장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물론 화장이란 것이 이미 속내를 숨기는 가식(假飾)일진대 무어 어렵겠는가?


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화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공격적 화장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이두가지가 번갈아 가며 카멜레온처럼 저절로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런 정도는 연구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어떤 안노인이 나라 경제가 어려워 IMF의 지원을 받고 야단칠 때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계집×들 주둥이에 시커멓게 칠하고 난리버꾸통 지길 때 내 이럴 줄 알아봤다.」
경험 많으신 그 노인의 말씀은 겸손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큰 경종을 울린 것이다.

 

건방을 떨다가 부끄럽게도 국가가 IMF의 체재에서 허영과 가식을 벗고 전 세계에 우리의 알몸을 내보인 것이다. 만약 아직도 남아있는 얼마간의 쓸데없는 허영과 건방이 있다면 빠른 시간에 훌훌 벗어 던져버리는 것이 거품을 걷어 없애는 첩경(捷徑)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새로운 화장을 해야한다.
국민소득이 얼마느니, 샴페인을 어쩌느니, 하던 아시아의 종이호랑이가 결국 얼마전의 우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정신이 번쩍 나게 씻고 흥청망청 비틀거리던 마음자세부터 가다듬은 후, 카멜레온의 그 방어적 화장으로 쳐들어오는 온갖 외적(外敵)에게 우리의 속내를 내 보이지 않아야 민족의 정조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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