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지난 여름, 후포항 』

일흔너머 2010. 2. 3. 15:04

 

[ 한창 더울 때였습니다. ]

 

대포(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에서 내려 동해안 7번 국도로 후포항까지 갔습니다.

하얀 모레를 바라보며 소복을 입은 여인네가 대여섯 모여 섧게도 울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천도제]인지 아니면 

물에 빠져 죽은 넋을 달래는 혼건지기 굿(진도의 씻김 굿같은 것)을 하는지 몰라도

그저 놀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것은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을 주민의 귀뜀으로 며칠 전 풍파에 배가 파손되어 배에 타고 있던 선원 모두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날이후,

후포항에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서 소복을 입고 섧게 우는 여인들과 함께 씻김굿을 합니다.

 

후포항의 넓은 주차장 옆으로 공동어시장 횟집이 있습니다.

그 한 코너에 잘 아는 늙수레한 아주머니가(거의 할머니 수준임) 있습니다.

크게 비싸지도 않고 그날 그날 들어온 생선을 골라 적당하게 소개하는 까닭에 자주 갑니다.

아주머니는 정성껏(생선을 짤순이에다 대고 물기를 빼지 않고 깨끗한 수건으로 꼭꼭 눌러 줍니다.) 회를 뜨고 매운탕거리는 따로 싸 줍니다.

저녁에 딸네집에서 술국으로 끓여 먹으라는 뜻이지요.

 

포장해 주는 회를 가지고 나만의 [전원주택]을 찾아갑니다.

해안을 벗어나 창수면으로 꺾어들어 가면 온달이 애용하는 정자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넓은 마당에 정자가 둘이나 있어 느티나무의 넉넉한 그늘 만큼이나 여유가 있습니다.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음식을 펼치면 나름의 조촐한 성찬이 됩니다.

전하는 말로는 요강을 엎어버린다지만 지금 이 나이에 뭐 그런 효과가 있겠습니까만

복분자 술 한 병정도에 사이다 한 병 그리고 하얀 쌀밥 한 도시락,

그야말로 황제의 밥과 황후의 찬입니다.

 

 

하지만 자작입니다. 

불쌍해 보이지요.

혼자서 이게 뭐냐고요?

사진을 찍어주는 아내가 있습니다.

취하면 대리운전도 해 주고요.

 

달콤한 복분자의 향이 몇 순배 목구멍에 넘어가면 거나해 집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봅니다.

다들 바삐 지나갑니다.

한참을 바라보면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는 게 뭔지?

 

 

 

 

세상을 둘러보면 희한한 일도 많습니다.
희한(稀罕)이란 드물 '희'자에다 드물 '한'자를 쓰니 결국 드물고 드문 일이란 겁니다.
정말 드문 일을 봅니다.
그것도 그냥 모르고 스쳐 지나면 안 보이지만,
하릴없이 이것저것 참견을 하고 둘러보면 별 희한한 것들이 보이는가 봅니다.
금줄 같은 새끼를 둘러친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나무 곁에 회나무가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나무와 회나무가 함께 자라다가 흔히 말하는 연리지[連理枝]가 된 것입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당나무가 아닌가 합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분명 앞으로 영물이 될 겁니다.
멀리 매미 소리가 아련하게 들립니다.
정자에 준비해둔 목침을 베고 길게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설프게 새끼를 두르고 두 나무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당당한 소나무에 비해 회나무는 부끄러운듯 몸을 비틀고...! ]

 

여름 하루 해는 깁니다.

일곱 시가 넘어서야 해가 빠집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하룻동안 내집이었던 정자를 나섭니다.

아마 이런 정자를 돈을 주고 마련하려면 억 소리 날겁니다...!

퇴직을 하고나니 전국에 이런 정자를 수천 개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해서 좋고 다들 [전원주택] 어쩌고 하는데 이 온달이라고 어쩝니까?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도 남들 하는 건 온달이도 다 해야하고 있어야 됩니다.

 

 

 

  

창수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커다란 풍차가 서서 지나는 바람을 잡습니다.

석보면의 맹동산 풍력발전소입니다.

산 등성이를 따라 줄이어 풍차가 돌아가는 걸 보면 가당찮습니다.

특히 한잔의 술을 마시고 얼그레 취했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대단합니다.

백두대간을 타고 내리는 맑은 공기는 또 어떻고요.

 

풍차를 돌리는 저 바람처럼,

한평생 그렇게 살며 다만,

그저 흔적없이 스쳐 지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