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하나 』

일흔너머 2008. 4. 6. 07:19

 

학교에서 분필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혈기왕성, 좌충우돌하던 교사 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는 교육청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장학지도란 것을 했다.
아침에 장학사가 학교로 나와 교장실에서 학교현황을 듣고(이걸 브리핑이라 했다.) 실제 활동은 어떻게 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수업도 참관하며 하루 종일 돌아본 후, 오후에는 교무실에서 모든 선생님들을 모아놓고 일장의 훈시를 하는 반성회를 가졌다.

 

우리 교육청 관내에서는 '얼 심기'라는 것을 하여 수업 전에 5분간 정신교육을 하고 본 교과를 가르쳤다. 그런데 그 '얼 심기'라는 것이 매 시간 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학사는 반성회에서 수업참관을 통해 그런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는 이런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거저 수업하기 바빴고 빠져 달아나 동료 선생님과 낚시에 열을 올릴 때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바로 이 '얼 심기'에서 장학사가 충효(忠孝) 이야기를 하였던 걸로 생각된다. 나라에 충성 어쩌고 하며 장학사가 입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하였다. 내 바로 옆자리의 이 선생님이 장학사를 향해
"야, 이 개×× 나가!"
하는 고함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장학사라고 하면 학교장도 어렵게 생각하는 지위인데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교감이 얼른 일어나 이 선생님을 말리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바짝 긴장된 채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 큰 소리도 잘 치고 우스개도 잘하며 쉽게 대해주어서 편하게 지냈던 분이라 걱정이 앞섰다. 물론 선생님의 다른 면을 보며 한편 놀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장학사라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던 사람은 이 선생님의 호통에 놀랐는지 몰라도 정말로 교무실을 빠져나가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이제 우리 학교는 큰일났다. 저렇게 장학사가 나가 버렸으니 앞으로가 문제다'하며 옆자리의 이 선생님을 쳐다보니 모두들 웅성거리며 바라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옷자락을 툭툭 털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누구 들으라는 지 혼자 하는 소린지 모르게,
"나라에 충성 좋아하네. 저 개×× 군대 안 갈려고 도망 다니던 놈이. 그래놓고 뭐 충성이 어쩌고 어째? 더러운 놈."
하는 것이었다.

옆자리의 선생님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백 명에 한 둘 살아온다는 안강-기계전투에 참가할 때 그 장학사는 후방으로 뱅뱅 돌며 부산으로 도망갔단다, 이 선생님 말을 빌리면 후방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돈 바쳐서 지금은 장학사까지 됐다는 것이다.
 
세상 정말 웃기는 일은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고도 이 선생님은 군번이 없다는 이유로 병역미필자가 되어 6.25 전쟁이 끝난 후 또 다시 군대에 끌려가야 했다는 것이고…….

이런 이야기를 이 선생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이야기하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철없던 시절 나는 거저 쓴 입맛만 다시며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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