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석이네 논 』

일흔너머 2008. 4. 9. 21:39

 

보경사(寶鏡寺)는 포항에서 영덕방향으로 반 시간정도 가면 있다.

송라면이란 곳에서 내륙으로 꺾으면 이내 물 좋고 경관이 수려한 내연산(內延山)골짜기에서 만난다.

그 길가에 마음좋고 부지런한 내 친구 석이가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포항에 살고 홀로된 자당께서 살고 계신다. 마당과 채전까지 천 평이 넘는 시골의 집이다.

석이는 일요일에는 어머님도 찾아뵐 겸 시골에 가서 밭을 관리하고 있다.

 

일전에 조용하고 햇볕도 좋은 날, 그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초여름의 신록이 한창 더해가던 때였다.

산딸기도 맛있게 먹고 마을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얘기를 나누던 나는 친구가 하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석이네 논이 바로 길옆이었는데 그 너른 땅에 길이란 것이 똑바르지 못하고 N자로 굽어져 있었다.

이유인즉 석이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그 길이 났고 마을에서 유지로 알아주던 석이 아버님의 말이 먹혀들어 자기들의 논은 피하다보니 길이 그렇게 굽었다는 것이다.

 

석이네는 방앗간을 운영했는데 시골에서 양조장이나 방앗간을 한다면 말 안 해도 부자고 유지였다.

유지(有志)란 마을이나 지역에서 명망 있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그래서 자신의 맘대로 마을일을 처리한 것이다. 겉으로야 뭐라고 했을까마는 그 길을 다닐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투덜댔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길을 똑바로 해야 할 처지였지만 그때는 대체로 그랬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안강(安康)을 지나면 무척 높은 재(嶺-시티재)를 넘는다.

힘겹게 올라가면 꼭대기에 길이 고쳐지기 전부터 있던 휴게소가 그대로 있다.

이 휴게소의 주인이 대단한 유지란다. 그래서 이 고개를 터널로 하여 대구 포항간의 철강을 실은 무거운 화물차가 쉽게 다니도록 하자는 것을 일부러 휴게소 앞을 통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휴게소가 사는 것이다.

실제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가 봐도 그 높은 다리를 만드는 비용만 하면 터널을 뚫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된다.

휴게소를 위해 도로를 설계한 셈이다.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지 않고 자기의 앞을 챙긴 결과다.

 

5.16혁명이랍시고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때도 그랬다.
목숨걸고 나라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나선 몇몇이 있었는가 하면 그 와중에도 자신의 앞을 챙긴 사람들이 있었다.

'국토건설단'이라 하여 군 기피자들을 붙들어다 제주도에서 저수지를 만들고 도로를 건설한 것이다.

지금도 제주에서 서귀포까지의 도로를 '5.16도로'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때 제주도의 어지간한 땅은 지금도 나라를 위한다며 큰소리치는 어느 유지의 소유로 되었던 것이다.

아마 그 사람 내일 곧 죽는다고 해도 진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다 같은 짓거리들을 하는 마당에 먼저 돌로 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유지(有志),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말의 의미는 차츰 타락의 나락으로 굴러 이젠 마을에서 설치는 작은 도둑부터 나라 훔치려는 큰 도둑까지를 일컫는 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2002년 09월12일>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금호강 둑길에서 만난 어린 왕자 』  (0) 2008.04.10
『 아픈 역사(歷史) 』  (0) 2008.04.10
『 사모님은 출타 중이고 』  (0) 2008.04.08
『 람보의 소망 』  (0) 2008.04.08
『 능하다는 인물들이란…… 』  (0) 2008.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