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Like a Mount Namsan armored pine, standing on duty still,)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wind or frost, unchanging ever, be our resolute will.)'라며 노래하듯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다.
까짓 한낱 나무에 불과한 걸 가지고 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가라고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소나무는 우리와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본사 동화사의 뒤에는 대구 시민의 정서가 어린
우람한 산악 팔공산(八公山)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싸움에서 여덟 명의 신하를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퇴각하였단 전설로 팔공산(八公山)이라 이름지어진 산기슭에는
수령이 얼마인지 가름하기조차 힘든 장송들이 우거져있다.
요즘, 그 장송들이 하나 둘 쓰러지며 죽어간다.
[날카로운 톱으로 V자 모양의 나란한 상처를 주어서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썩어가고 있는 모습]
물론 새로이 작은 묘목이 뒤를 잇겠지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할 역사의 흔적들,
죽어 가는 장송의 밑동에 낙인(烙印)처럼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나라가 삼십 육 년 굴욕의 일본제국식민통치 하에 있을 때 얻은 상처다.
기름이 부족한 일본은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소나무의 껍질을 찢고 송진을 채취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일부 군국주의자들은 일본이 조선에 문명의 혜택주고
반도개발 운운하지만 나무의 껍질에 생채기를 내어 그 진액을 빼내가듯
우리 강산을 착취했던 흉측한 흔적은 우리의 주위 곳곳에 남아있다.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인들 성하기를 바랄 수 있었겠는가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이 잊혀지듯
차츰 상처받은 소나무가 죽고 그 흔적이 묻혀지면
아픈 역사마저 잊어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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