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예순 여섯의 노인이 있다.
그 분은 집과 일터인 공장까지가 무려 20Km나 된다. 모르긴 해도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 이상씩 걸릴 것 같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십 여분 걸어나와서 버스로 십 여분 달려서야 지하철 정류장에 오면 다시 지하철을 삼십 분 족히 타고 또 내려서 공장까지 십 여분 더 걸어서야 도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노인 사는 집 근처에 무슨 프로젝트라나 하는 것이 되는 바람에 예전에 농사짓던 땅이 모두 그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로또에 서너번 당첨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정도의 돈을 보통 사람들이 가지면 다들 다니던 공장 일도 그만 두고 맛있는 것 먹고 여행이나 하며 늘그막을 편히 보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다. 계속 그 어려운 출퇴근에다 또 얼마나 돈을 아끼는지 퇴근 무렵 피로를 푼다며 마시는 술도 예전과 다름없는 막걸리 한두 사발이다.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는 말이
"그 돈 아꼈다가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그라나?"
라고 안됐다는 듯 나무란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번에 퇴직을 하고 시집간 두 딸이 아빠엄마 함께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돈을 주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여행 코스를 살피다가 그만 두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여행 한번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아내는 공무원 박봉으로 아끼고 절약하며 겨우겨우 생활해 오다가 갑자기 그 월급의 두 서너 달 치의 거금을 며칠만에 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벌고 모으는 데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노인은 아무리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와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돈이란 써본 사람이 쓴다.
오십 수년 아니 평생동안 돈을 버는 버릇으로 살다가 갑자기 쓴다는 것은 버릇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어색하기가 짝이 없다. 그래서 퇴직자들이 자신의 퇴직금으로 가만히 있으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데도 자꾸 더 벌려고 일을 벌이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퇴직금을 한번 옳게 써 보지도 못한 채 다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한번도 돈을 써 보지 않고 버는데만 습관이 된 우리들에겐 돈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버는 것만큼 쓰는 것도 그 시기와 방법이 중요하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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