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나른한 봄 이야기 』

일흔너머 2008. 4. 28. 18:24

 

날씨는 몸이 건질건질 하도록 화창하였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부인들 셋이서 나물을 캐러갔다.

이제 갓 봄소식을 들은 애기쑥이 겨우 고개를 내밀고 냉이는 긴 뿌리를 뽐내며 노란 새싹을 내밀었다. 셋은 정신 없이 봄볕에 취해 나물을 캐는데 멀리서 사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보시오, 거기서 뭣들 하는 게요?"
할머니 한 분이 저만치 걸어오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무언가 못 마땅한 눈치가 담겨져 있었지만 순박한 시골 노인네였다.

나물을 캐던 세 사람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줄 알고 왜 그러느냐고 할머니께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할머니."
그러자 가까이 다가온 할머니는,
"내가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화투를 치려니까 돈이 없어서 말이야. 그러니 십 원짜리 있으면 몇 개 줘."
라는 것이었다.

 

보통은 이런 염치없는 할머니가 있나 싶겠지만 한편 생각하면 얼마나 순박한가?

생면부지 낯선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부탁하는 건데……. 이렇게 생각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천 원짜리 한 장을 말없이 건네 주었다. 그러자 돈을 받아든 할머니는,
"고맙구먼 젊은이. 내가 이렇게 돈을 얻었으니 보답으로 한 가지 알려주겠네. 지난 해 이곳에는 냉이 죽으라고 독한 약을 뿌렸거든. 그러니 저 둑 너머로 가서 냉이를 캐도록 하게나."
하고는 주름진 얼굴에 의미 심장한 웃음을 빙긋 웃었다.

 

이런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셋은 순진하게도 지금까지 힘들여 캔 냉이를 몇 뭉치씩이나 꺼내 버리고 말았다.

까짓 봄나물 조금 안 먹으면 될 일을 가지고 농약이 뿌려진 곳에서 어떻게 캔단 말인가?

그리고 노인이 일러준 곳보다 더 멀찌감치 떨어져 냉이를 캤다.

 

 '할머니가 일러주지 않았다면 독한 농약이 든 나물을 먹을 뻔했다'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노인을 칭찬하며 나물을 캤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돌아오는 길이었다. 세 사람은 똑같이 아까 노인이 일러준 장소를 지나면서 지금껏 할머니를 칭찬하던 것과는 달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들이 버린 냉이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냉이에 묻은 흙을 툴툴 털며,
"젊은 것들이란 쯧쯧...그저 농약이라면 저렇게 무서워서야."
하며 얄미우리 만치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는 할머니를 상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놀라서 던져버린 냉이가 그 자리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