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부부는 설악산 봉정암에 갔다.
수학여행인솔관계로 설악산을 인근 야산에 가듯 많이도 갔지만 봉정암은 처음이었다. 2박 3일의 산행에 경치는 좋았지만 피곤은 극에 달하였다. 하산하는 길에 소청봉 산장에서 박카스를 한 병씩 사서 마셨다.
한 병에 물경(勿驚) 이천 원(2000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약분업에 대해 불평을 해가며 투덜댈 때 나의 친구약사도 마찬가지였다. 목 좋은 곳에서 조제보다는 매약(賣藥)을 주로 취급하던 친구는 약국 문을 닫고 잠시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에 불러내어 술 한 잔 사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이윤 좋은 곳으로 약국을 선정하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친한 사이라 이런 저런 핑계로 저녁시간에는 못 만나 아쉬운 터라 잘 되었다 싶어선 지 술자리에 나왔다.
좋은 안주에 술과 밥을 잘 얻어먹고 대청봉을 소개 해 주었다. 동네에서는 경쟁으로 한 박스 스무 병에 2000원 하는데 고작 한 병에 2000원을 받으면 그건 대단한 이윤이지 않느냐? 우리 나라 어느 구석에 가서 박카스를 그렇게 팔 수 있겠는가? 하며 한바탕 웃고 말았다.
나는 차갑고 상쾌한 아침에 일어나는 일출의 장관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을 동경해 왔다. 물론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성산 일출봉은 사진으로만 보았지 직접 가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출봉 가기 전에 들리는 곳에서 유명하단 돼지고기에 민속주 몇 잔 들이키면 구경이고 뭐고 간에 그만 골아 떨어져 버리고 만다. 모든 이가 관람하고 올 때에야 겨우 깨어나서 안타까워하곤 했다.
며칠 전에도 제주도에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만은 일출봉을 꼭 보리라고 각오를 단단히 하여 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짙은 안개가 나의 조그만 소원을 방해하였다. 결국 구경도 못하고 내려오는 길에 매표소 옆에 있는 조그만 슈퍼마켓을 들러 물을 3병 샀다. 똑 같은 제주생수상표의 1000ml을 대구에서는 한 병에 팔구백 원 비싸야 천 원 하는데 500ml 한 병에 천 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물이 우리 집 냉장고까지 운반되는 운반비를 포함하면 오히려 더 비싸야 하는데 이건 제주도에 와서 더 비싼 제주생수를 사 먹어야 하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계산을 잘못한 것 같아서 다시 값을 묻는 나에게 슈퍼마켓의 그 주인아저씨는,
"여기가 관광지 아닙니까?"
그래, 여기가 관광지인지를 나도 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관광한국을 부르짖는 이때에 전국이 관광지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
조그만 이런 일화는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실망시키고 관광에 종사하는 그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다.
마치 택시기사들이 손님을 박대하다가 화난 손님이 자가용을 사서 길이 비좁아지고 손님이 줄어 그들의 수입이 위협받는 처지가 되는 것과 같은 악순환과 같다. 서해안의 해수욕장도 마찬가지다. 해수욕하기에는 얼마나 좋은가? 경사 밋밋한 모래밭에 수영하기 좋은 미지근한 바닷물 그리고 여러 가지 연관되는 주위의 관광자원까지….
그러나 한두 번의 바가지를 쓴 사람은 다시 찾지 않는다. 결국 물 맑다는 이유 하나로 동해안에 모든 손님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오는 해수욕객에겐 더 심한 바가지로 골탕 먹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 좋은 자원을 두고 마지막 남은 생존의 악순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십 년 전 대학시절 속리산 문장대에서 정가의 두 배로 비싸게 싸서 피우던 담배를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속리산은 잘 있는지? 그리고 문장대의 시원한 비바람은 화북을 넘어서 아직도 삼도(三道)를 스쳐 지나는지?
또 한번 가보려고 해도 무섭다.
그때 전매청에서 판매하는 담배는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서도 같은 값을 받아야 한다고 알고 있던 내게 그 원칙이 깨지는 엄청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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