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풀 위에 부는 바람 』

일흔너머 2010. 9. 9. 09:57

 

길을 걷다가 관공서 앞에 멋지게 써 붙여 논 슬로건(Slogan)이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표어의 대부분은 그렇게 노력하자고 권하거나 그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목표가 보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안되기에 저렇게까지 써 붙이고 해야만 하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5공화국 때 경찰서마다 써 붙인 『정의 사회 구현』이다.


얼마나 정의사회가 아니었으면 그랬을까?
책상을 탁하고 치는 바람에 『 억 !』하며 까닭 없이 죽어간 박종철 같은 젊은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우리들 중에는 벌써 잊어버리고 그때가 좋았다고 실없이 떠드는 사람도 간혹 있다.

 

제6공화국 때는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고 하면서 어수룩하게 생긴 보통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긁어모아 뒷날을 대비하는 성실함을 보였는가?
우스운 얘기지만 그 성실함이 너무 지나쳐 교도소까지 방문하고 나와서는 아직도 전직 대통령이라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청와대에서 때때로 전과자들의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공자가 일찍이 그의 밑에서 배운바 있는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季康子)를 타이르는 말에 이런 부분이 있다.
정치를 논하며 계강자가 물었다.
「만일 무도한 사람을 죽임으로서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정치를 하고 있으면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대가 착한 일을 하고 싶어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착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이다.」

 

결국 바람은 동(東)으로 불면서 풀이 서쪽으로 눕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그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윗사람의 행동에 따라 아랫사람들도 같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치는 바른 것이다.
백성과 아랫사람 거느리기를 올바른 것으로 하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