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은 삼 년이라도 이야기는 평생이다.
같은 병과를 달고 함께 훈련을 받거나 그렇다고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것도 아닌데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남자들은 난리다. 그것은 군 생활이 그만큼 어렵고 고통스러웠다는 측면이 있는가하면 피끓는 젊은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 셋 모이면 애 낳는 이야기, 남자 셋 모이면 군대 이야기로 떠들썩한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목숨을 걸고 고통스럽게 보낸 한 순간이 언제 또 있었을까를 말해 주는 것이다.
고통스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거기다가 한창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황금 같은 시간들이 아닌가. 그래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군에 갈 때도 지금처럼 멀쩡한 사람이 군대를 가지 않고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면제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권세가 있어서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약삭빠르게 법을 이용하는 친구도 있었다. 주위에 아는 친구들은 그저 함께 섞여 그럭저럭 살아가지 약삭빠르게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는 친구는 없다. 대부분 우직하고 성실하게 군 복무를 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에서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라는 걸 찾아 약빠르게 줄을 선다. 그리고는 국민으로서 권리를 탐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1982년)에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했다. 포클랜드라는 섬에 대한 소유권 때문이었다. 영국은 모병제로 군을 유지하고 있다. 그와 반해 아르헨티나는 징병제다. 억지로 전쟁에 끌려나온 군인들을 통솔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결과는 강대국인 영국이 미국의 지지아래 승전을 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영국은 왕세자가 직접 헬기를 몰고 전쟁에 참여하고 여왕과 수상이 여론을 업고 국토를 방어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자기들의 영토를 지키는 데도 아르헨티나는 그렇지 못했다. 전사자와 부상자 수를 보면 영국은 장교가 월등히 많은데 아르헨티나는 사병들이 많았다.
평시에는 장교라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권리를 주장하던 아르헨티나의 지휘자는 전쟁이 나자 사병들의 등뒤에서 돌격하라고 고함만 쳤던 것이다. 반대로 영국은 장교가 앞서서 공격을 주도했던 것이다.
「나를 따르라!(Follow me!)」
육군소위를 달고 광주의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바로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넉 달 동안 교육을 받았다.
보병학교의 교훈이다.
장교는 사병들보다 앞장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장교 계급장을 달지 말아야 한다.
군이나 기피한 사람이 무슨 국회의원이고 무슨 장관이란 말인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루 8시간 근무 엄수 』 (0) | 2011.03.30 |
---|---|
『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 (0) | 2011.03.08 |
『 삶은 쇼가 아니다 』 (0) | 2010.10.08 |
『 풀 위에 부는 바람 』 (0) | 2010.09.09 |
『 비틀즈와 소녀시대 』 (0) | 2010.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