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을 키워보면 부모로서 가지는 재미가 다르다. 딸은 잔정이 많고, 아들은 무뚝뚝하지만 믿음직스럽게 맡은 일을 처리하여 대견하고 듬직하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성장과정에서부터 유별(有別)나다. 소설가 선우휘씨의 얘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병으로 어린 동생이 죽었을 때, 어머니는 통곡하며 여러 가지 사설(辭說)로 종일토록 슬퍼하였는데 아버지는 깜깜한 방구석자리에서 담배만 피우며 고개를 떨구었다가 다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크게 한숨을 쉬다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설움을 참지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팔을 잡아당기면서 몸부림치고 몰인정하다며 울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아버지는 동생에게 정이 없어 그런가 보다라고 선우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묵묵히 낮을 보낸 아버지는 해가 저물자 삽과 괭이를 들고 거적에 동생의 시체를 곱게 싸서 지고는 뒷산으로 가면서 자기를 같이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표나지 않게 잘 묻고는 지게를 지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여 집으로 오면서 이상한 생각에 뒤돌아보니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는 통곡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슬퍼 보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으시던 아버지가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그렇게 슬피 울음을 우시더라 는 것이었다. 그것도 저녁놀이 깔리는 산 그림자 속에서 참고 참았던 통곡을 터트리더라는 것이었다. 사나이가 아들을 잃고 설움에 겨워 한없이 우는 울음의 의미를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선우휘씨는 이해하게 되었단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점을 너무나 잘 표현한 일화라 할 수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려 깊은 아버지의 배려는 동서양이 같다. 아카데미상을 4개 부문에서 수상하였지만 더스틴 호프만과 톰크루즈가 열연한 레인맨(Rainman)은 우리나라에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다. 또 별로 어렵지 않은 줄거리지만 차분히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태도를 같지 못 하면 깊은 감동은 포기해야한다. 간단한 예로, 관람했다는 사람들을 붙잡고 제목에 나오는 레인맨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으면 대부분 모른다. 그냥 자동차 중계상인 동생이 자폐증환자인 형(Raymond)이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상속을 받은 사실을 알고 가로채려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형제애(兄弟愛)를 느낀다는 이야기정도만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의 발단이 양(洋)의 동서를 떠나 장애를 가진 모자라는 자식에게 더 많은 정(情)을 베푸는 사려 깊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됨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동생은 형이 받은 상속만 생각했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만큼 형이 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향한 불만도 컸었다. 현실적으로 남남간에 가지는 오해는 오히려 쉽게 풀리지만 부모형제사이의 앙금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결이 어렵다. 하지만 추억 속의 사소한 한두 가지 상황이 모든 오해를 풀어 가는 우연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현실에서 보는 우리들 삶과 흡사한지 줄거리가 실감을 준다. 자신이 겨우 말을 배울 때, 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레이먼드(Raymond)란 발음이 모자라 레인맨 레인맨 이라고 했다는 형의 설명을 듣고는 갑자기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 그 때의 가족이 생각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결국 형제가 아버지를 그리고 가족을 이해하는 것이 이 영화의 내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가족의 장래와 자식들을 걱정하는 속내 깊은 사려는 겉으로 들어내 보이는 어머니의 사랑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통 철없는 어린 자식들의 경우 어머니가 더 가족을 걱정하는 걸로 생각한다. 자식들 앞에서 장난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어머니를 감싸고 보호하려한다. 그러나 반대로 어머니가 아버지를 누르고 때리는 시늉을 하면 아이들의 태도가 영 다르다. 어떤 때는 속으로 '이 녀석들 실컷 벌어 먹여놓으니까 이 모양이군'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버지의 인품이나 깊은 뜻을 자식들은 모르고 가신 뒤에야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내림이다. 이런 것을 반영하는 시대적 흐름으로 요즘은 주위에 형제가 이웃하여 같이 사는 경우보다 자매가 가까이하며 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차츰 어머니중심의 가정생활이 이루어지고 아이들도 아버지의 형제인 고모보다는 어머니 형제 쪽인 이모와 더 가깝고 친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자식이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애틋하게 느껴질 때, 진정 성숙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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