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군병원 신장내과 중환자실,
「계급 : 상병, 성명 : 김○현
입원일 : 2002. 5. 16.
병명 : 삼일열 - 말라리아
담당의 : 대위 박○○ 」
병상에다 환자의 명찰을 걸어두고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해 자고 있는 막내를 만났다. '격리되어 있다가 중환자실로 옮겼다.'고해서 부랴부랴 조퇴를 해 서울로 달려갔다. 성남 어느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수도국군병원.
낯선 길을 물어 나 먼저 병원을 찾아와 간호를 하고 있던 아내는
"어제보다는 열이 많이 내렸고 먹는 것도 좀 낫다."
고 한다.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일부러 웃으며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열 때문인지 눈 주위가 부어 있었다. 소변 색깔을 보니 진한 고동색,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간호장교를 만나 여러 가지 상태와 앞으로 결과를 물었다.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너무 당황하여 혹 실수라도 저지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하였더니 전화는 언제 어디로 하면 환자와 통화할 수 있다며 일일이 일러주었다. 무척 친절하였다.
열이 내리는 것을 보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 왔다. 뒤가 걱정스러웠지만 병원에서 잘 수도 없는 처지고 해서 월요일에 다시 네 엄마가 올라 올 것이라고 막내를 달랬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린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설마 내 아들이 그럴 줄이야 정말 몰랐다. 군의관 말로는 아마 지난 해 훈련중 모기에 물렸을 것이라 했다. 잠복기가 일년이나 된단다. 어떤 사람은 제대를 하고 난 후에야 발병을 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아무리 어려운 곳에 가 있어도 면회는 가지 않을 것이니 열심히 군복무해라고 했더니 이 녀석이 결국 이렇게 면회를 오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드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특히 오랜만에 이렇게 대하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다.
국민의 의무가 뭔지, 충성이 뭔지……?.
부드러웠던 미소년의 손발이 막노동자 보다도 더 거친 굳은살로 덮인 것을 볼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아들의 등만 쓰다듬어주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거저 묵묵히 국방부시계가 탈 없이 돌아가기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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