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로 된 연어가 떨어지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을 설치해 놓은 유리의 성...!]
<둘째 날>
밤새 잠을 설쳤다. 잠자리가 바뀌면 그렇겠지만 창 밖의 바람소리는 마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자다가도 눈을 뜨곤 했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지만 마라도 가는 첫 배를 타려면 여덟시까지 준비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지키기 위해 그 단잠을 버리고 여섯시에 일어나야 했다. 밖에는 비보다 바람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세수를 마치고 아침을 먹고 제일 먼저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마라도 가는 배편은 취소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공기 운항도 전면 취소되었다고 했다. 가이드는 마라도 가는 배가 뜨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지 모른다고 우리를 위로했다. 바람이 부는 날 마라도에 갔다가 사고가 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우중에 그것도 태풍보다 더 맹렬한 바람을 뚫고 관광은 계속되었다.
처음 찾은 곳은 「유리의 성」이었다. 모든 것을 유리로 만들어 두었다는 곳이다. 그러나 비바람 속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거저 바람과 비를 피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바빴다. 사진도 실내에서만 가능하지 밖에서는 몸도 가누기 힘들었다. 관광이 아니라 이건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다. 한바퀴 돌고 나면 아랫도리가 다 젖어있었다.
아내는 우산이 부서졌다며 결국 비닐로 만든 비옷을 사 입었다. 그 비옷도 내게는 거저 가슴만 가려졌지 바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급한 대로 버스를 타면 조금씩 마르다가 또 내리면 젖고 또 마르다가 젖고 이렇게 반복을 하다보니 저녁에는 몸이 파김치가 될 정도로 피곤했다. 옛 어른들 '날씨가 큰 부조'라는 말이 생각났다.
[비바람 속에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차밭을 구경했습니다. --- 설록 녹차 박물관 삼층 전망대에서]
두 번째 들린 곳은 「설록 녹차 박물관」이었다. 차 잎이 봄기운을 받아 한창 푸른 가운데 줄지어 있는 모습은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전시관에는 젊은이들이 올해 생산한 녹차를 맛보도록 우려내어 시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무게를 달아 판매도 하고 있었다. 맛도 좋고 향도 좋아서 아이들 주려고 몇 봉을 샀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맛과 향이 뛰어났다.
십여 년 전, 막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온가족이 함께 제주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본 돌고래 쇼를 「퍼시픽랜드」라고 이름하여 바다사자와 돌고래, 그리고 일본 원숭이 쇼를 하고 있었다. 비가 와서 갈 때가 없는 수학여행단, 그들도 우리와 같은 운명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그 돌고래 쇼를 또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린 곳이 「제주 국제평화센터」였다.
세계적인 인물들을 밀랍으로 인형을 만들어 전시한 곳인데 연예인까지 포함된 것은 다소 상업적인 것이 가미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했다. 사실 말이 났으니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평화센터를 지어놓고 어쩌고 하는 것은 과거에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그 후손이 평화를 사랑하도록 교육하고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과거에 정말 평화를 사랑했던 우리 민족이 무슨 이런 센터가 필요한가? 나카사키 원폭박물관에 가보면 온통 우리 나라 사람들 일색이고 일본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원폭박물관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부하여 짓고 우리 나라 관광객이 입장료를 내고 관람한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중국인들이 하는「해피타운 기예단쇼」를 보고 제주 농민이 재배한다는 상황버섯농장을 들렀다. 언제부턴가 관광을 하면 이런 쇼핑이 꼭 몇 개씩 따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같이 마음 여린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어떤 때는 관광객이 사지 않으면 가이드가 딴청을 부리며 다음 여행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본 여행은 휘딱 진행하고 쇼핑은 질질 끌며 오래 동안 기다리는 것이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아내는 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분이 제주에 사시는데 이번 여행에서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지난해는 맛있는 유기농재배 감귤을 보내주어 맛있게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라봉이란 귤을 한 보따리나 가지고 오셨다. 거기다가 자기의 스승이 쓴 시집 [백록을 기다리며]을 저자의 사인까지 직접 받아 건네 주시는 것이었다. 아마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의미를 짚으라면 호텔로비에서 차를 마시며 그 분의 넉넉한 마음을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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