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낙엽을 보며 』

일흔너머 2009. 4. 30. 09:58

 

 

날씨가 허락한다면 점심을 먹고 금호강을 따라 난 둑길을 산책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 밤새 들볶아대더니 느티나무 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악을 쓰고 버티는 벚나무 빛 바랜 이파리 몇 개가 남았다.

 

아이들은 역시 다르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공놀이에 바쁘다. 공 한 개를 서로 다투며 골대에 집어넣는 걸 지켜보면 정말 어렵다. 번번이 실패를 한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운 좋은 녀석이 던진 공이 겨우 들어간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게 쉽고 만만한 것은 아닌가보다.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공이 아이들 원하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도 마찬가지다. 이때껏 꼭대기에서 자랑스레 흔들리던 그 잎들은 싫든 좋든 떨어져야한다. 그리고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자신이 드러누울 자리를 찾아야 한다. 바람에 이리 구르고 저리 날리며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순리를 따르는 잎새들은 벌써 땅에 내려앉아 쉴 곳을 찾아 구른다. 무슨 미련이 있는지 떨어지기 싫어 모질게 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떨고있는 몇몇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구차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언젠가 더 거칠고 험한 바람에 떨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땅이라고 다 견디기 힘들고 험할까.
시간이 흐르면 낮고 후미진 곳도 견딜만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숙연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가풀막진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처음부터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땅에 떨어져야 할 일이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할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막상 내려와 보라.
험할 것 같은 그 후미진 자리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더 이상 불행해질 것도 없다. 세상에 이보다 더 편하고 안전한 곳은 없다.

모든 걸 버리고 왜 낮은 곳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늦게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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