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가 결혼하기 전에 장인 될 분을 만나 첫인사를 할 때 이야기다.
지금은 사돈이 되었지만 그 사돈이 막내의 뒤 배경을 어느 정도는 딸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삼남매 중에 막내로 외동아들이라는 것, 그러니 자연 한다는 말이,
"남의 귀한 아들을 우리가 맞이하게 되어……."
하자 막내가 대뜸 그렇지 않다고 서둘러 대답을 했단다.
"저는 집에서 귀한 아들 아닙니다."
듣는 저쪽의 장인 될 분은 예의로 하는 말일 것이라며 그냥 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막내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애틋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는 일부러 어렵고 험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군대에 갈 때도 마음은 섭섭해도 밖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았다. 부대 앞까지 배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지내다 오라며 버스를 태워보낸 것이 다였다. 일부러 아들에게 홀대하며 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은 나의 지난 날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맏이와 막내는 부모로부터의 사랑이 정말 다르다.
나에게 위로 두분 형이 있는데 큰형이 군에 갈 때 집안의 모든 분위기가 그렇게 침통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무슨 초상난 집 같았다. 그리고 보름 정도가 지나자 분위기가 조금 나아지려는데 우체부가 형의 옷을 가지고 왔다. 그러자 어머님이 통곡을 하는데 얼마나 슬프게 울던지 지금도 기억난다.
누나와 나는 두 형의 군대생활 기간동안 무슨 죄인처럼 자숙하며 지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내가 군에 갈 때는 웃으며 가리라. 형들과는 십 년의 차이가 있어서 군대가 좋아져서 그렇지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군에 갈 때도 맏이는 그랬다. 같은 과(科)의 친구와 함께 가려고 흔히 이야기하는 「따블빽」을 메고 친구네 집을 찾았다.
그리고 대문 밖에서,
"□□아, 군대 가자!"
하고 불렀더니 그 가족들은 헤어지는 슬픔에 젖어 울고 있다가 나의 고함소리에 웃음바다가 된 것이었다. 대문이 열리고 집에 들어가니 친구의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집에서 아무도 배웅하지 않나?"
"예. 곧 올 건데요 뭐."
내 대답을 듣고 친구 엄마는 우리 어머니가 너무 늙어서 오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눈치였다.
며칠 전에 대학 졸업식에서 머리가 하얀 시골노인네를 직접 만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차도 잘 못 타시고 형님들은 자신이 겪은 지 벌써 오래되어 지나간 과거지사로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있었다. 그러니 자연 온 식구가 시큰둥한 반응이고 누나는 멀리 외국에 사시니 내게 관심을 가질 사람은 동네 친구나 후배들이고 정작 집안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속으로는 섭섭했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도 또 할 곳도 없었다.
그런데도 주위에서는 막내가 항상 관심을 많이 받고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지금 손녀가 태어나 자라는 것을 보며 첫째가 받는 관심과 사랑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둘째, 셋째…… 이렇게 자꾸 태어나면 첫째에게 쏟아 부었던 그 애틋한 정은 사라질 것이다.
얼마 전에 장모님은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문병을 가면 나를 보고 '이 서방 왔는가.'하기도 하고 집사람을 보고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맏이 이름을 부르며 '우리 □□이 언제 오나?'하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끝까지 맏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끈은 놓지 않았다.
세상 섧은 것은 막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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