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축제에서 쫓겨나다-2009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 』

일흔너머 2009. 9. 25. 20:28

 

평소 육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백 미터를 십 초 내에 뛴다는 세계적인 선수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다. 세계육상대회를 앞두고 대구시가 그 전초전으로 [2009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잔치를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하고 입장권을 구하려고 알아보았다. 연일 TV에서 선전도 하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어저께 둘째의 친구가 입장권을 구해 주었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가자고 이리저리 연락을 했다. 입장권이 무려 열 장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느리 해산한다고 서울 올라간 친구,

공장이 하도 바빠서 울산 갔다가 방금 올라와서 정신이 없다는 친구,

내일부터 비가 올 것이라며 밭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친구,

심지어 오늘 저녁에 제사라는 데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다리를 다쳐서 잘 걷지를 못하는 아내를 차에 태우고 월드컵스타디움으로 갔다. 생각 같아서는 앉는 자리까지 차를 끌고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가면 내려놓고 차를 주차장에 대고 아내를 부축하여 자리를 잡으면 될 것이라 혼자 생각하면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주차권'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나는 입장권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해병대 군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입에 문 계급보다는 늙은 군인들이 하는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분명 입장권이 아닌 '주차권'이라는 것이었다. 주차권 그런 걸 나는 모르지만 아내가 다리가 아파서 그러니 입구에 내려놓고 차를 다른 곳에다 주차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다른 차들이 막히니 빨리 차를 빼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냥 돌아서 나오는 것이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까짓 안 보면 되는 것, 한번도 이 스타디움에 와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없는 나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둘러보니 쫓겨난 승용차들이 월드컵스타디움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 집단으로 무단 주차해 있었다. 주차장은 주차권이 있어야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주차권은 어디서 누구에게 발급해 주는지 모른다.

 

돌아오는 길, 남부주차장 네거리에는 2009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를 선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란 글씨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멋모르고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은 맥이 풀릴 일이었다.